챗GPT 개발사 오픈AI가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의 '인재 엑소더스'를 겪고 있다. 공동 창립자를 포함한 핵심 연구진과 임원들이 잇따라 회사를 떠나면서 내부 균열이 심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최근 미국 국방부(펜타곤)와의 인공지능(AI) 기술 계약을 둘러싼 윤리 논란까지 불거지며 인재 유출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 하드웨어 총괄 칼리노브스키 사임…"자율 살상·감시 우려" 제기
9일 업계에 따르면 오픈AI 창립 멤버 11명 가운데 현재 회사에 남아 있는 인물은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와 그렉 브록먼 사장 단 두 명뿐이다. 나머지 창립 주역 대부분은 지난 1~2년 사이 회사를 떠나거나 경쟁사 및 스타트업으로 이동했다.
가장 최근에는 하드웨어 부문을 총괄하던 케이틀린 칼리노브스키(Caitlin Kalinowski)가 지난 7일 사임을 발표했다. 그는 애플에서 맥북 설계에 참여하고 메타에서 증강현실(AR) 글래스 '오리온(Orion)' 개발을 이끌었던 하드웨어 분야 핵심 인물로, 2024년 오픈AI에 합류해 로봇공학과 소비자 하드웨어 전략을 맡아왔다.
칼리노브스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AI가 국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사법적 감독 없는 대규모 국내 감시나 인간 승인 없이 작동하는 자율 살상 시스템은 충분한 논의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국방부와의 계약이 기술적 안전장치(가드레일)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발표됐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번 사임은 단순한 임원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칼리노브스키는 애플과 메타에서 하드웨어 제품 개발을 이끌었던 인물로, 최근 오픈AI가 아이폰 디자인을 이끈 조니 아이브와 협력해 AI 하드웨어 제품을 개발하려는 전략의 핵심 인물로 꼽혀왔다. 업계에서는 그의 이탈이 오픈AI의 장기적인 하드웨어 전략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방부 계약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 실리콘밸리 AI 업계 전반의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당초 미국 국방부는 오픈AI의 경쟁사인 앤트로픽과 협상을 진행했지만, 앤트로픽이 대규모 국내 감시와 완전 자율 살상 무기에 AI 기술이 사용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하려 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국방부는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했고, 오픈AI는 국방부와 별도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오픈AI 내부에서도 반발이 이어졌다. 회사 직원 일부는 공개 서한을 통해 "대규모 감시와 자율 살상 무기 개발에 AI가 활용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며 경영진의 결정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 같은 갈등은 소비자 반응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국방부 계약 소식이 전해진 직후 챗GPT 앱 삭제율은 하루 만에 295% 급증했다. 반면 'AI 안전'을 강조해 온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는 미국 앱스토어 무료 앱 순위에서 챗GPT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 수츠케버·무라티 떠난 뒤에도 이어진 핵심 연구진 이탈
최근 오픈AI를 떠난 인물들은 대부분 경쟁사나 새로운 AI 스타트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모델 정책 및 안전 연구를 담당했던 안드레아 발로네는 올해 2월 오픈AI를 떠나 앤트로픽에 합류했고, 연구 부사장이던 제리 투오렉 역시 올해 초 회사를 떠났다. 투오렉은 오픈AI의 추론 모델 'o1'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핵심 연구자 중 한 명이다.
앞서 2024년과 2025년에도 핵심 연구진의 이탈이 이어졌다. 전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미라 무라티는 2024년 퇴사해 인공지능 스타트업 '싱킹 머신즈 랩(Thinking Machines Lab)'을 창업했으며, 오픈AI 연구진 상당수가 이 회사로 이동했다.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과학자였던 일리야 수츠케버 역시 같은 해 회사를 떠나 '세이프 슈퍼인텔리전스(SSI)'라는 새로운 연구 조직을 설립했다.
또 다른 공동 창립자인 존 슐먼은 앤트로픽을 거쳐 무라티의 스타트업에 합류했고, 연구 부사장 바렛 조프 역시 싱킹 머신즈 랩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활동 중이다. 슈퍼얼라인먼트 프로젝트 공동 책임자였던 얀 라이케도 "안전 연구가 제품 출시 압박에 밀렸다"고 비판하며 앤트로픽으로 이직했다.
이처럼 핵심 인재들이 잇따라 회사를 떠나면서 오픈AI 내부 연구진의 구조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1년 사이 약 50명 이상의 연구원과 엔지니어가 메타와 앤트로픽 등 경쟁사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메타는 '슈퍼인텔리전스 랩'을 신설하며 오픈AI 출신 연구자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오픈AI가 초기의 '안전한 AI 개발'이라는 철학에서 벗어나 정부 협력과 상업화 중심 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샘 올트먼 CEO는 최근 국방부 계약 논란과 관련해 "단기적으로 브랜드 이미지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내부 직원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다만 올트먼은 AI의 국방 활용 여부는 기업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 행사에서 "AI가 국방 분야에서 어디까지 사용될 수 있는지는 기업 경영진이 아닌 공직자가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