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달리

애플이 '비싸게 팔아도 이기는 게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싸게 팔아도 지배하는 게임'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습니다. 최근 공개한 보급형 스마트폰 신제품의 가격을 전작보다 낮춘 데 이어, 처음으로 100만원 미만의 맥북 신제품까지 내놓으면서입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진입 장벽을 동시에 낮춘것은 단순한 라인업 확장이 아니라, 애플의 수익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 부품 가격 올랐는데 가격 낮춘 보급형 제품 내놓는 애플

8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오는 11일 보급형 스마트폰 신제품 '아이폰17e'와 맥북 신제품 '네오'를 출시합니다. 두 제품 모두 국내 출고가 기준 99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심리적 저항선인 100만원선을 넘기지 않은 겁니다.

애플에 따르면 아이폰17e의 글로벌 출고가는 256GB 모델이 599달러, 512GB는 799달러로 각각 책정됐습니다. 최근 메모리값 상승으로 스마트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애플은 아이폰17e 가격을 전작(아이폰16e)보다 100달러씩 인하했습니다. 아이폰16e의 출고가는 128GB 모델이 599달러, 256GB가 699달러, 512GB가 899달러였습니다. 아이폰 17e는 보급형이지만 전략은 얕지 않습니다. 칩셋은 A19를 넣고, 자사 인공지능(AI) 기능 생태계인 애플 인텔리전스까지 묶어 '입문용이지만 최신 경험'이라는 메시지를 강화했습니다. 충전 규격에서도 그동안 보급형에서는 인색했던 자석 기반 무선 충전 기능인 맥세이프까지 적용하며, 하위 모델의 불편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정했습니다.

애플 노트북 신제품 맥북 네오의 가격은 더 공격적입니다. 애플은 이 제품의 출고가를 자사 노트북 역사상 최저가인 599달러로 책정했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판매되는 교육용의 경우 499달러까지 가격 할인이 들어갑니다. 한국 가격으로는 99만원, 교육 할인을 받으면 85만원에 구매 가능합니다. 애플은 노트북의 진입가를 한 번에 낮춰 '맥북을 처음 사는 사람'을 정조준했습니다. 100만원 미만이지만A18 프로 칩셋 기반으로 웹서핑, 스트리밍, 사진 편집 같은 일상 작업을 소화하고, AI 기능 활용도 가능합니다.

◇ 하드웨어보다 서비스 판매가 더 남는다

애플이 보급형을 확장하는 이유는 숫자가 말해줍니다. 지난해 애플의 서비스 부문 매출(1092억달러)은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는 작년 아이폰 판매 매출(2096억달러)의 절반 수준에 해당합니다. 아이폰 매출이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애플이 더 주목하는 것은 '마진 구조'입니다. 서비스 부문 매출총이익률은 75%대에 이르러 제품 부문과 격차가 큽니다. 사용자 수가 늘면 늘수록 서비스의 레버리지는 더 커집니다. 보급형 시장 확대는 이 구조를 가속하는 가장 빠른 수단입니다.

점유율 측면에서도 애플의 욕심은 커졌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집계에서 애플은 2025년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 점유율 20%로 1위에 올랐습니다. 애플이 그동안 전 세계 스마트폰 산업 이익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며 '이익의 왕'으로 불렸다면, 이제는 '판매 대수의 왕'까지 노리는 흐름입니다. 보급형 시장에서 한 번 더 점유율을 끌어올리면 서비스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습니다.

◇ 보급형 확대는 양날의 칼

다만 보급형 확대는 애플에도 양날의 칼입니다. 가격이 내려갈수록 소비자는 더 꼼꼼하게 사양을 비교합니다. 일례로, 아이폰17이 120Hz 주사율 디스플레이를 지원하는 것과 달리, 아이폰17e는 60Hz 고정 주사율을 유지하는 것처럼, 눈에 띄는 '급 나누기'가 남아 있으면 "보급형은 결국 보급형"이라는 인식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맥북 네오 역시 가격을 맞추기 위해 빠진 기능들이 부각되는 순간, '애플다운 완성도'에 대한 기대치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서비스 확장 전략 자체도 규제 리스크와 맞물립니다. 앱스토어 수수료, 결제 규칙, 생태계 잠금 효과를 둘러싼 반독점 압박이 커질수록 서비스는 '성장의 엔진'이면서도 동시에 '공격받는 표적'이 됩니다. 애플이 보급형으로 사용자 저변을 넓히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그 확장이 프리미엄 브랜드의 신뢰와 충돌하지 않게 설계하는 일은 더 어려운 과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판매 대수입니다. 기기 한 대에서 남기는 마진보다 더 큰 돈이 '그 다음'에서 나옵니다. 앱, 구독, 결제, 클라우드로 이어지는 서비스 매출이 커질수록 애플에 가장 중요한 핵심성과지표(KPI)는 프리미엄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생태계의 사용자 풀로 재정의됩니다. 보급형이 프리미엄의 반대말이 아니라, 서비스 시대의 성장 엔진이 되는 셈입니다.

김경원 세종대 경영학과 석좌교수는 "애플이 보급형 시장에서 사용자 확대를 통해 서비스 및 콘텐츠 결제를 끌고 가는 장기 고객층을 두텁게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면서 "애플이 새로운 사용자를 얼마나 많이 끌어들이냐 보다 이들이 얼마나 오래 애플의 생태계 안에 머무르느냐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