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2조엔(약 18조원)을 투자해 일본에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는 일본 매체의 보도를 공식 부인한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근 수년간 일본 정부와 지자체 등으로부터 반도체 공장 설립 제안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두 회사는 국내 정치권과 정서를 고려해 수년째 반려 중이라는 전언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고위 경영진은 최근 수년간 일본 반도체 공장 설립에 대해 비용 견적 수준의 검토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반도체 생산 라인을 짓는다는 의사 결정 단계에 도달한 적은 없지만,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인 혜택을 제시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고위 관계자는 "투자 비용과 총소유비용(TCO) 측면에서 일본에 메모리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비용이 국내 대비 절반 수준"이라며 "국내 공장 설립에는 이렇다 할 혜택이 없고 오히려 부수적인 비용까지 들지만, 일본 측은 자국에 공장 유치를 위해 세금부터 인프라 지원, 인력, 현지 장비 업체들과의 커넥션까지 '풀패키지'식 지원을 제안한다"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해외 반도체 기업의 생산거점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규모 보조금과 투자 외교, 인력·공급망 지원을 묶은 패키지 전략을 사용해왔다. 이는 단순한 유치 홍보를 넘어 공장 설립 비용을 낮춰주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입지·인력·정책 안정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 설비투자 보조금이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은 대만 TSMC의 일본 자회사인 JASM 구마모토 공장에 대해 최대 4760억엔 규모의 지원을 제시했고, 이후 두 번째 투자와 관련해서도 추가 지원 방침을 내놓으며 유치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미국 마이크론에도 히로시마 공장 생산능력 확대와 차세대 D램 투자에 대해 단계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며 설비 투자를 유도한 바 있다.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일본 키옥시아의 합작 생산거점에도 일본 정부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투자 외교도 병행됐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반도체를 경제안보 핵심 산업으로 규정하고 글로벌 반도체 기업 경영진과 직접 만나 일본 투자 확대를 요청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투자를 민간 기업 판단에만 맡기지 않고, 총리실과 관계 부처가 전면에 나서 '국가 차원 프로젝트'로 다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일본 반도체 공장 설립 카드를 당장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과 중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위해서는 일본 공장 설립이 가장 안전한 선택지지만 국민 정서와 정부·지자체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두 기업 입장에선 한국 투자가 비효욜적일 수밖에 없다"며 "세금, 보조금, 인프라 구축 비용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온갖 요구로 비용 누수가 발생하며 정권에 따라 호남 지역 등으로 분산 투자를 요구하는 등 사실상 사업 방해에 가까운 수준으로 반도체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