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지난 17일(현지시각) 공시를 통해 보유 중이던 ARM 잔여 지분 약 110만주(약 1억4000만달러 규모)를 전량 매각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때 400억달러 규모의 인수를 추진하며 '세기의 딜'을 노렸던 ARM과의 자본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낸 셈입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CES 2026 라이브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뉴스1

대신 엔비디아는 라이벌인 인텔에 약 79억달러(약 11조원, 지분 약 4%)에 달하는 전략적 투자를 집행하며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엔비디아가 설계 자산(IP) 소유라는 상징적 명분보다, AI 데이터센터의 '실질적 영토'를 장악하기 위해 전략의 축을 옮겼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그간 인텔의 'x86 아키텍처'는 인공지능(AI) 열풍 속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습니다. 전력 효율을 앞세운 ARM이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세를 넓히는 동안, x86은 "전기만 많이 먹고 AI 연산에는 무겁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엔비디아 역시 자체 중앙처리장치(CPU) '그레이스(Grace)'를 ARM 기반으로 설계하며 x86을 대체하는 독자 플랫폼 구축에 공을 들여왔습니다. CPU부터 그래픽처리장치(GPU)까지 모두 엔비디아 기술로 채워 인텔 의존도를 낮추는 '수직 계열화'가 그간의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엔비디아가 다시 인텔(x86)과 손을 잡은 배경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이 있습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뿌리'가 여전히 x86 기반이라는 점입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수십 년간 x86을 중심으로 서버 인프라와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다져왔습니다. AI 서버 한 세대를 위해 이 거대한 인프라를 통째로 ARM으로 갈아타는 것은 천문학적인 비용과 운영 리스크를 수반합니다. 엔비디아는 "기존 서버를 다 바꾸라"고 요구하는 대신, "이미 쓰고 있는 인텔 서버 위에서 우리 GPU를 가장 완벽하게 붙여주겠다"는 현실적인 타협안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기에 최근 부상한 '에이전트형 AI'는 이 기묘한 동거에 기술적 명분을 더해줍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여러 도구를 호출하는 에이전트 AI는 CPU의 짧은 지연시간과 순간적인 '버스트 성능(Burst Performance)'을 요구합니다. 많은 코어를 효율적으로 돌리는 데 강점이 있는 ARM과 달리, 고클럭 처리에 능한 x86은 복잡한 논리 분기를 처리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CPU가 명령을 내리는 속도가 느려지면 고가의 GPU가 연산 명령을 기다리며 노는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데, 인텔의 x86이 이 지점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최근 인텔과 자사의 고속 통신망인 'NVLink(엔브이링크)'를 인텔 CPU에 직접 통합하는 공동 개발에 합의했습니다. 이는 메타(Meta)와 같은 거대 고객사가 수백만 개의 GPU를 도입하면서도 기존의 x86 기반 서버 환경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요구를 정확히 관통합니다. 메타가 최근 엔비디아와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며 인텔 기반의 서버 아키텍처를 고수한 점은 엔비디아가 왜 인텔을 아군으로 포섭해야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결국 엔비디아의 전략은 ARM 라이선스를 통해 설계 효율은 유지하되, 실제 비즈니스가 벌어지는 x86 서버 생태계까지 아군으로 흡수해 '양쪽 진영 어디서든 엔비디아가 표준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인텔의 제조 역량과 x86의 설치 기반을 자사 생태계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어떤 서버 환경에서도 엔비디아 GPU가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 선택지로 자리 잡도록 판을 짜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