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소셜미디어(SNS) 이용을 둘러싼 글로벌 규제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메타의 내부 연구 문건이 미국 '청소년 SNS 중독' 선도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가운데, 관련 내용이 전면 금지 입법에 근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의 판단에 따라 각국의 입법 시계도 한층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의 경우 전면 금지 대신 부모 통제권 강화 등 '정밀 규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
18일(현지시각)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1심 법원에서 열린 청소년 SNS 중독 관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번 소송은 20세 여성 케일리 G.M이 어린 시절 과도한 SNS 사용으로 불안과 우울증 등을 겪었다며 메타와 구글 등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묻는 사건이다. 미국 전역에서 대기 중인 수천 건의 유사 소송의 향배를 가를 재판으로 평가된다.
재판의 쟁점은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과 무한 스크롤 구조 등을 통해 청소년을 서비스에 장시간 머물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했는지 여부다. 원고 측은 "이용자가 중독될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라며 고의성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애덤 모세리 인스타그램 CEO는 법정에서 "임상적 의미의 중독과 문제적 사용은 구분해야 한다"면서 SNS를 약물·도박 중독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과도하다고 반박했다.
주목되는 부분은 메타 내부 연구 '프로젝트 MYST(메타와 청소년 사회정서 동향)'다. 해당 보고서는 메타와 시카고대 연구진이 청소년 1000명과 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공동 연구로, 부모와 가정 환경 요인이 청소년의 SNS 사용 강박과 거의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담고 있다. 부모가 이용 시간을 통제하려 노력해도 중독 여부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취지다.
그동안 플랫폼 기업들은 부모 감독 기능 강화와 디지털 웰빙 도구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구글의 동영상 플랫폼 서비스 유튜브가 부모가 자녀의 쇼츠 시청 시간을 하루 '0분'까지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도입하고, 추천 알고리즘에 청소년용 고품질 콘텐츠 기준을 반영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내부 연구에서조차 부모 통제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정황이 확인될 경우, 부모 책임을 전면에 내세운 자율 규제 접근은 설득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각국의 입법 흐름은 이미 강경 기조로 기울고 있다. 호주는 2025년 12월부터 만 16세 미만의 SNS 이용을 전면 금지했다. 부모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예외를 두지 않았고, 이를 위반한 플랫폼에는 최대 5000만호주달러(약 45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시행 직후 약 470만개의 계정이 비활성화된 것으로 추산된다.
프랑스,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도 연령 기준을 15~16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스페인은 16세 미만 전면 금지와 함께 부적절한 콘텐츠를 방치한 플랫폼에 형사 책임을 묻는 방안까지 거론했다. 말레이시아는 16세 미만 SNS 사용 금지와 실명 기반 전자신원확인(eKYC)을 의무화했다.
인도에서도 호주식 모델을 참고해 16세 미만의 SNS 이용 금지를 검토하는 주 정부들이 등장했다. 인터넷 이용자만 10억명을 넘어선 인도 시장에서 청소년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광고와 데이터 기반 성장 전략을 펼쳐온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청소년은 체류 시간이 길고 반응성이 높은 핵심 이용자층이기 때문이다.
입법 강화의 배경에는 청소년 정신건강에 대한 우려가 자리한다. 2023년 미국 보건복지부는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SNS를 이용하는 청소년의 우울·불안 위험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유의미하게 높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해 경고했다. 국내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조사 결과, 청소년의 46.7%가 SNS 이용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숏폼 콘텐츠 이용 시간 조절이 어렵다는 응답도 42.2%에 달했다.
한국은 비슷한 듯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SNS 규제 법안은 해외처럼 계정 자체를 금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부모 동의를 통해 알고리즘 추천과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구조다. 플랫폼의 직접적 책임보다는 부모에게 통제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반면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초·중·고 수업 중 스마트폰 금지' 조치는 통과됐다. 플랫폼 규제 대신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 사용을 제한하는 접근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도 부모 통제권 강화와 알고리즘 책임 확대 등 '정밀 규제'가 논의되고 있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은 "청소년은 보호 대상이면서도 기본권을 향유하는 주체"라며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신중한 접근을 강조한 바 있다.
유홍식 중앙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법으로 SNS를 전면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국내 주요 SNS가 대부분 외국계 기업이어서 규제에 나설 경우 역차별 논란이나 통상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있고, 유럽처럼 연합 단위로 압박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나 시민단체가 강하게 요구해야 입법 동력이 생기는데, 지금은 그런 사회적 에너지도 예전만큼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