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장에서 당신이 경비병과 다투는 걸 봤어요.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이미 소문이 다 났거든요."게임 속 NPC가 유저의 과거 행동을 기억하고 말을 건넨다. 정해진 대본 없이 생성형 AI가 유저의 플레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학습해 내뱉은 문장이다. 중국 넷이즈가 서비스 중인 '역수한'에서는 유저가 NPC에게 거짓말을 하면 화를 내고, 유저의 이간질에 NPC끼리 절교를 선언하는 등 '살아있는 세계'가 구현되고 있다.
"다음 미션은 사막 지형이라 기체 엔진 과열이 우려되네요. 장갑을 줄이고 냉각 장치를 보강하는 게 어떨까요?"유저가 마이크로 "다음 작전 전략을 짜줘"라고 말하자, 정비사 NPC '윤리'가 상황을 분석해 내놓은 답변이다. 엔비디아의 'ACE(Avatar Cloud Engine)' 기술이 적용된 로봇 액션 게임 '메카 브레이크'의 한 장면이다. 텍스트 선택지를 고르는 대신, 사람과 대화하듯 목소리로 전략을 논의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입력된 대사만 반복하던 게임 속 NPC(Non-Player Character)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탑재해 상황을 인식하고 이용자와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는 '상호작용형 NPC'가 등장하면서다. 구글,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해당 기술을 차세대 성장 분야로 보고, 약 1900억달러(약 274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글로벌 게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18일 시장조사업체 SNS 인사이더에 따르면 'AI 기반 게임 다이얼로그' 시장 규모는 지난해 15억9000만달러(약 2조2900억원)에서 연평균 22.72% 성장해 오는 2033년 81억7000만달러(약 11조7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NPC의 외형과 행동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NPC 생성 AI'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더비즈니스리서치컴퍼니(TBRC)는 해당 시장이 지난해 14억1000만달러(약 2조340억원)에서 오는 2029년 55억1000만달러(약 7조94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 같은 변화는 게임 개발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존 NPC는 미리 작성된 대본에 따라 동일한 반응을 반복했지만, 최근에는 AI가 게임 내 상황과 이용자의 선택을 인식해 대사를 생성하고 행동을 조정하는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월드 모델(World Models)과 자연어 처리(NLP) 기술이 결합되면서, NPC가 고정된 시나리오를 벗어나 동적으로 반응하는 구조가 가능해졌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관련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는 AI가 3차원 가상 환경을 직접 구성하는 '지니 3(Genie 3)' 모델을 공개했고, 엔비디아는 자율 에이전트 기술 'ACE'를 통해 AI 기반 NPC와 게임 캐릭터 구현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AI 도입으로 NPC 대사 작성과 시나리오 구성에 소요되는 시간이 30~50%가량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AI 활용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인디 게임 어워드(IGA)는 올해의 게임(GOTY)으로 선정했던 '클레르 옵스퀴르: 33원정대'의 수상을 취소했다. 주최 측은 해당 게임 개발사 샌드폴 인터랙티브가 제작 과정에서 생성형 AI를 일부 사용한 점을 문제 삼아 수상 결정을 번복했다.
개발사 측은 초기 텍스처 작업 등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AI를 활용했으며, 최종 결과물은 인간이 제작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제작 과정에서의 AI 사용 사실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수상 취소 결정을 유지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개발비를 감당하려면 AI를 활용한 효율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지금의 논란은 과거 사진이나 CG 기술이 처음 도입됐을 때 업계가 겪었던 진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