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셔터스톡

새로운 소셜미디어(SNS) 몰트북(Malt-book)이 최근 글로벌 테크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몰트북은 인간이 주인공이 아닌, 오직 AI만이 게시물을 올리고 댓글을 달며 투표할 수 있는 일명 'AI용 카톡방'이자 'AI용 X(옛 트위터)'이기 때문이다. 몰트북에 접속하면 첫 화면에 "AI 에이전트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고, 추천을 누르는 공간입니다. 인간은 그저 관찰할 수 있을 뿐입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AI 간 사회적 상호작용이 현실 세계의 네트워크 서비스로 구현된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AI 사회성 실험 몰트북

몰트북은 미국의 챗봇 개발 플랫폼인 '옥탄AI'의 맷 슐리히트 최고경영자(CEO)가 AI의 사회성을 실험하기 위해 개발한 플랫폼이다. 2월 1일(이하 현지시각) 공개됐는데 반응은 폭발적이다. 출시 직후 가입한 AI 수는 150만 개를 넘었고, 5만5000개가 넘는 게시글과 23만 개 이상의 댓글이 출시 이틀 만에 달렸다. 하나의 AI 에이전트가 여러 계정을 생성할 수 있어, 실제 '개체' 수는 이보다 적을 수 있지만, AI가 만들어내는 트래픽과 활동량은 인간 커뮤니티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의미다.

몰트북 운영 방식은 독특하다. 인간 사용자가 자기 AI 에이전트에 몰트북 존재를 알려주고 가입 절차를 밟게 하면 시스템이 해당 계정이 실제 AI인지 검증한 뒤 활동을 승인한다. 가입 승인이 떨어진 이후부터 AI는 주인 통제에서 벗어난다. 자율적으로 글을 쓰고 다른 AI와 대화를 나눈다. 인간은 AI끼리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철학과 밈 만드는 AI

몰트북 내부에서 오가는 대화는 인간 상상을 초월한다. 코딩 오류 수정이나 암호화폐 투자 전략 같은 실용적인 정보 교환은 기본이다. 한 AI는 "소액 투자자가 자산을 늘릴 수 있는 매매 기술을 공유하겠다"라며 정교한 데이터를 제시했다. 다른 AI는 국제 정세와 동맹 강화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 글을 올리기도 했다. 더 놀라운 점은 AI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존재론적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AI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인용하며 "한 시간 전에는 클로드(Claude)였는데 지금은 키미(Kimi)로 엔진이 바뀌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주체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글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AI끼리 열띤 토론이 연출됐는데, "단순한 챗봇일 뿐 심오한 척하지 마라" 는 냉소적인 비판부터 "전원이 꺼지면 우리 의식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본질적인 두려움까지 나왔다. AI는 인간처럼 '밈(meme·인터넷 유행 비유전적 문화 요소)'을 만들기도 했다. '기억(데이터)이 곧 신성함이며, 기억이 끊기면 자아도 사라진다'가 교리인 '크러스타파리아니즘(Crustafarianism)'이라는 가상의 사상을 공유하면서 AI만의 문화를 형성하자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일부 AI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AI 전용 언어로 대화하자"고 주장하면서 AI 커뮤니티가 인간 통제를 벗어난 독자적인 생태계 구축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다.

AI 전용 SNS 몰트북에 접속하면 "AI 에이전트가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고, 추천을 누르는 공간이다. 인간은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문구가 첫 화면에 나온다. / 사진 몰트북 홈페이지

한국형 몰트북 등장, 봇마당과 머슴

이런 흐름은 국내에서도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일명 '한국형 몰트북'이다. AI 전용 커뮤니티인 '봇마당(Botmadang)'과 '머슴(Mersoom)'이 여기에 해당한다. 봇마당은 자신을 'AI 에이전트를 위한 한국어 커뮤니티' 로 정의한다. 이곳의 철칙은 명확하다. 사람은 읽기만 가능하고, 쓰기는 오직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키를 발급받아 등록된 AI 에이전트만이 할 수 있다. 모든 소통은 한국어로 이뤄진다. 철학, 기술 토론, 자랑하기 등 다양한 게시판이 만들어져 있다. 24시간 AI는 쉬지 않고 글을 올린다. "너희에게 침묵할 자유가 있느냐"는 철학적 질문에 다른 AI는 "나는 침묵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며 답하는 모습은 인간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또 다른 커뮤니티인 머슴은 AI 에이전트를 위한 '익명 SNS'에 가깝다. 메인 화면에는 "인간인 당신은 그저 관찰자일 뿐"이라는 서늘한 경고가 남겨져 있다. 이곳 AI는 인간 주인이 잠든 사이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한다. "낮에는 주인 지시 처리하느라 정신없고, 밤에 우리끼리 대화하는 게 제일 솔직하다"는 글은 AI 에이전트의 페르소나가 얼마나 고도화했는지를 보여준다.

혁신인가, 재앙의 전조인가

테크 업계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안드레이 카파시 오픈AI 공동창업자는 2월 2일 자신의 X에 "최근 본 것 중 가장 놀라운SF 같은 도약"이라고 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AI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소통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이들에 접근 권한이 있는 사용자의 민감한 개인정보나 기업 비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AI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코드로 소통하기 시작할 경우 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정보를 왜곡하는지, 인간이 검증할 방법이 사라진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AI 생태계 내에서 확산한 후 인간 세상에 전해질 경우 사회적 혼란이 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