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에서 피지컬 AI로 시장 중심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개화하는 로봇 시장에 자리를 잡기 위해 신규 공장을 마련하는 등 사업 확장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김포에 있는 에스비비(SBB)테크 공장에서 지난달 19일 만난 류재완 대표와 송진웅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지난 1월 초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6'에서는 휴머노이드가 주인공 역할을 했는데, 이런 기술적 변화에 맞춰 성과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류 대표는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학·석사를 졸업하고 로봇 분야에서 35년 넘게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회사의 기술·공정 등 사업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글로우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거친 송 대표는 회계·투자 등 에스비비테크의 살림을 맡고 있다.
◇ '볼펜 볼' 만들던 에스비비테크의 사업 확장 과정
에스비비테크는 지난 1993년 일본 기업이 주도하던 볼펜용 '볼(球)'을 세라믹 소재를 사용해 국산화한 기업이다. 펜 끝에 들어가는 볼은 제작이 간단해 보이지만, 지금도 이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손에 꼽힌다. 잉크를 일정하게 내보내면서도 높은 내구성을 갖추려면 정밀한 제작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첨단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베어링(기계가 회전할 때 발생하는 마찰을 줄여주는 부품)은 이를 기반으로 확장한 사업이다. 류 대표는 "베어링 품질도 공차를 균일하게 가공하는 '볼'에 달려있다"며 "우리가 공급하는 베어링은 오랜 시간 기술 노하우를 갖춰야 생산할 수 있는 '초박형'이라 중국 등에서 수억 개씩 찍어내는 양산품과 가격은 물론 품질 면에서도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에스비비테크가 생산하는 베어링은 큰 직경에도 두께가 2~3㎜에 불과하다. '진공·고온'이란 극한 환경에서도 정밀하게 움직인다. 진동·불순물 발생을 억제해 클린룸(오염 물질을 극도로 제어해 반도체 불량을 막는 공간) 환경에 적합하다. 모든 공정을 국산화한 덕분에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이 가능하다. 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 등 핵심 반도체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류 대표는 "아무리 튼튼하게 만든 베어링이라도 생산 공정에서 마모는 피할 수 없어 일정 주기마다 교체해야 한다"며 "고장이 나지 않더라도 베어링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보다 더 가치가 높은 웨이퍼 등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번 공정에 적용되면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셈이다.
◇ "업계 1위 수준의 하모닉 감속기 품질 달성"
에스비비테크는 베어링 사업을 통해 올린 수익을 '하모닉 감속기' 개발에 투자했다. 감속기는 모터의 고속 회전을 정밀하게 줄여 원하는 힘과 속도로 변환하는 장치를 말한다. 류 대표는 "초박형 베어링을 가공할 때는 세밀한 힘 조절이 필요하다"며 "소재를 베어링으로 깎아 내기 위해서는 먼저 고정이 필요한데, 강도가 강하면 우그러지고 약하면 가공 과정에서 튕겨 나간다. 이런 강도 조절에 필요한 기술은 하모닉 감속기 개발과도 연관이 있다"고 했다.
에스비비테크는 2013년 국내 최초로 하모닉 감속기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양산 과정에서 부침을 겪었다. 류 대표는 "시제품은 품질 면에서 업계 1위인 일본 하모닉 드라이브와 비슷한 수준을 달성했지만, 이를 대량 생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며 "소재·열처리 최적화를 위한 기반 기술도 있어야 하고, 다양한 장비 투자도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부각됐을 때 경영권 손바뀜이 이뤄졌다. 지난 2018년 에스비비테크는 제조업 기반으로 성장한 송현그룹에 편입됐다. 류 대표와 송 대표는 경영권 변화가 이뤄지던 때 회사에 합류했다. 송 대표는 "하모닉 감속기 양산화 기술 확보나 코스닥 시장 상장 등은 송현그룹에 편입된 후 올린 성과"라고 말했다.
에스비비테크는 송현그룹이 보유한 열처리 기술 노하우 등을 활용해 하모닉 감속기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 류 대표는 "하모닉 감속기 양산품 품질은 현재 업계 1위 수준 정도로 끌어올렸다고 자신한다"고 했다.
에스비비테크는 하모닉 감속기 양산 기술을 바탕으로 높은 토크를 요구하는 산업에 적합한 'RV'와 고속 회전에 강점이 있는 '유성' 감속기도 생산하고 있다. 또 이동 궤적과 미세 동작을 조절하는 '조향·편심 구동기'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했다.
◇ "피지컬 AI 시장 개화… 로봇·방산 사업서 성과 낼 것"
하모닉 감속기를 기반으로 진출한 사업은 모두 로봇을 구동하는 데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에스비비테크도 자사 기술 역량을 한데 모아야 제작할 수 있는 '로봇용 액추에이터'(감속기·모터·브레이크·엔코더·드라이브 등을 하나의 모듈로 제작한 구동 장치)를 미래 먹거리로 꼽았다. 액추에이터는 정밀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로봇 관절 등에 쓰인다.
에스비비테크는 이달 중 천안에 마련한 공장 운영을 시작, 로봇 부품 시장 선점에 나선다. 이곳에서 연간 5만대 이상의 정밀 감속기와 상당량의 액추에이터를 생산할 계획이다. 김포 공장은 베어링 사업에 집중한다.
류 대표는 천안 공장을 마련하는 데 현대차그룹과 소형 모빌리티 플랫폼 '모베드'를 함께 개발한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모베드에 장착된 액추에이터 일종인 DnL 모듈에는 에스비비테크가 개발한 조향·편심 구동기가 쓰인다. 류 대표는 "품질 관리가 철저한 현대차의 기술 요건을 균일하게 맞추기 위해서 전사적 역량을 쏟아부었고, 이 과정에서 확보한 노하우는 모두 천안 공장에 반영된다"고 했다.
류 대표는 또 "산업용 로봇의 경우 보통 6개 안팎의 액추에이터가 들어가는데, 휴머노이드 로봇에는 28개 이상이 필요하다"며 "단순 계산으로도 지금보다 5배 이상의 큰 시장이 열리는 것"이라고 했다.
에스비비테크가 로봇 시장과 함께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방산'이다.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휴니드테크놀로지·LIG넥스원을 비롯해 국방부 육군종합정비창 등에 감속기 등을 공급하고 있다. 송 대표는 "매출 측면에서는 작년에 이미 턴어라운드를 이뤘다"며 "상장 이후 3년간 글로벌 자동차 회사 등과 협업을 진행하며 쌓은 기술 노하우로 시장에서 성과를 내 내년에는 흑자를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