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미디어텍 로고./조선DB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자체 인공지능(AI) 칩을 제작하는 주문형 반도체(ASIC)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중저가형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 주력하던 대만 미디어텍도 '저전력 설계' 기술력을 무기로 ASIC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디어텍은 올해 1분기 구글의 차세대 AI 칩 TPU v7e(7세대)의 시생산을 개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브로드컴과 협력해 자체 AI 칩을 설계·양산해 오던 구글은 AI 추론에 특화된 저전력 AI 칩 설계는 미디어텍에 맡겼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미디어텍은 TPU v7e 시생산을 1분기 중 돌입할 계획이다. v7e는 7세대 TPU(텐서처리장치)인 '아이언우드'의 설계를 토대로 AI 추론에 특화한 동시에 전력 효율을 극대화한 칩이다. 구글은 아이언우드의 설계를 브로드컴과 협력해 양산에 돌입한 바 있다. 다음 세대 추론용 AI 칩인 v8e도 미디어텍이 도맡아 설계해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AI 모델을 고도화하는 과정은 통상 '학습'과 '추론'으로 나뉜다. 학습은 대량의 데이터로 패턴을 '배우는' 과정이고, 추론은 학습된 모델을 이용해 새로운 데이터에 대한 예측이나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을 뜻한다. AI 모델 훈련 과정의 골격이 되는 학습에 필요한 AI 칩은 브로드컴이 담당한다면, 이를 토대로 전력 효율 등을 극대화해 추론에 집중하는 AI 칩은 미디어텍이 맡는 것이다.

그동안 AI 칩 시장은 엔비디아와 AMD 등 대형 반도체 기업이 장악해왔다. 하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칩 가격이 치솟기 시작하고, 제때 칩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범용으로 칩이 제작돼 불필요한 전력 소모량이 막대해지면서 AI 모델에 최적화된 자체 AI 칩 제작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구글과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SIC 시장에 뛰어든 이유다.

구글 클라우드의 7세대 TPU(텐서처리장치) 아이언우드./구글 클라우드 제공

ASIC 시장이 커지면서 대만 미디어텍도 본격 참전했다. 엔비디아, AMD 등과 비교해 반도체 설계 역량이 내재화되지 않았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브로드컴을 협력사로 두고, AI 칩을 설계해 왔다. 구글과 메타 등이 시장에 출시한 TPU와 MTIA 등 자체 AI 칩은 브로드컴 주도로 설계됐다. 하지만 구글이 AI 추론에 특화된 저전력 칩을 미디어텍에 의뢰하며 미디어텍의 시장 진출이 본격화됐다.

미디어텍은 AP 시장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히는 '저전력' 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ASIC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미디어텍은 퀄컴과 스마트폰의 두뇌인 AP 시장에서 경쟁해 오던 기업이다. 퀄컴이 프리미엄 라인업에 주력했다면, 미디어텍은 중저가 시장을 겨냥해 몸집을 키워왔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미디어텍의 AP 시장 점유율은 37% 수준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미디어텍은 ASIC 시장이 확대되면서 매출도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차이리싱 미디어텍 최고경영자(CEO)는 "ASIC 매출이 (올해) 10억달러를 돌파하고 다음 해에는 수십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대만 자유시보는 "이르면 내년 미디어텍 전체 매출에서 ASIC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육박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의 전력 소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저전력 설계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저전력 설계에 강점이 있는 미디어텍이 이를 바탕으로 ASIC 시장에 진출해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