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트레이더가 업무를 보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뉴욕 증시에서 "인공지능(AI)이 너무 비싸다"는 고평가 논란이 커지면서 4일(현지시각) AMD를 비롯해 엔비디아, 브로드컴, 메타, 테슬라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주가에 타격을 입은 가운데 국내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집중된다. 증권가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주가에 발목을 잡을 위험 요소로 인식하고 있으며 메모리 반도체 가격에도 시간차로 반영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이번 논란이 빅테크의 AI 설비투자(CAPEX)의 속도 조절에 관여할 뿐 실제 AI 수요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단기적으로 관련 기업들의 주가에 영향을 미치고, 메모리 가격 급등을 다소 완화할 수는 있어도 지속적인 상승세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호황을 장기적으로 이끌고 가기 위해 필요한 '속도 조절'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AI 관련주 고평가 논란이 이어지면서 4일(현지시각) 뉴욕 증시는 업종별 차별화 흐름 속에 혼조세로 마감했다. 이날 시가총액 1조달러 이상 빅테크 가운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만 상승했고 나머지 종목은 일제히 하락했다. 엔비디아는 3% 넘게 떨어졌고 브로드컴과 메타, 테슬라도 3%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아마존과 알파벳 역시 2% 넘게 내렸다. AMD는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분기 매출 전망을 내놓으면서 주가가 17% 급락했다.

AI 열풍에 대한 거품론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내내 월스트리트를 비롯해 국내외 증권가에선 AI 관련주에 대한 투자 과열과 수익성 문제 등이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하지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작년 4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내내 메모리 공급 부족이 시장 지속될 것을 시사하면서 두 기업은 AI 거품론에 대한 우려를 일정 부분 불식시켰다.

엔비디아를 비롯해 브로드컴, 메타, 구글 등 빅테크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 기업들의 생산량을 상당 부분 빨아들이고 있는 현 상황이 다소 진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AI 고평가 논란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악재라기 보다는 시장 정상화 측면에서 오히려 필요한 과정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메모리 가격 폭등이 지나치게 심화되고 품귀 현상이 오래 지속되는 건 장기적으로 메모리 기업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라며 "전자·IT 업계가 현재의 기술 수준을 유지하며 꾸준히 성장 수요가 발생하는 생태계로 진화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거품론이든 이상 신호든 속도 조절을 해줄 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뉴스1

SK하이닉스 역시 주가에 대한 시장 기대치가 일정 부분 조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 출하량과 수익성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SK하이닉스에 정통한 관계자는 "지금 뉴욕 증시가 흔들리는 이유는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며 "작년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밝혔듯 HBM3E(5세대 HBM)와 HBM4(6세대 HBM)는 이미 계약 물량이 모두 팔린 상태이며, D램과 낸드플래시 역시 연간 수요로 보면 전례 없는 호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범용 D램, 낸드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출하량 감소로 유례없는 가격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메모리 가격은 전분기 대비 80~90% 상승할 전망이다. 범용 서버 D램의 상승세가 주요 원인으로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분석했다. 지난해 4분기까지 상대적으로 오름폭이 낮았던 낸드플래시 메모리도 올해 1분기 80~90% 수준으로 동반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최정구 카운터포인트 책임연구원은 "제조 업체들은 부품가격 상승과 소비자 구매력 약화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분기가 진행될수록 수요는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최 연구원은 "제조사들의 손익 역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이 예상된다"며 "올해 1분기는 D램 이익률이 처음으로 역사적 고점을 넘어서는 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