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반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 국면 속에서 가장 기회가 큰 시장은 정보와 물리적 세계가 만나는 지점으로, 90조달러(약 12경원)에 달합니다."젠슨 황 엔비디아 CEO
"우리는 전례 없는 가속의 시대를 살고 있고, AI가 주도하는 이 거대한 파도는 제조 공정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고 있습니다."파스칼 달로즈 다쏘시스템 CEO
엔비디아와 프랑스 소프트웨어 기업 다쏘시스템이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피지컬 인공지능(AI) 실현을 위해 손잡았다. 다쏘시스템이 강점을 지닌 버추얼 트윈(virtual twin·가상 공간에 만든 현실과 동일한 쌍둥이 모델) 기술을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가속 컴퓨팅에 접목해 앞으로 세계 곳곳에 건설될 공장의 설계와 운영을 담당한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항공기, 자동차 등 제조 시설부터 AI 가동에 필수적인 AI 팩토리까지 모든 공장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설계·생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사전에 제거해 비용을 절감하는 게 목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파스칼 달로즈 다쏘시스템 CEO는 이달 1일부터 4일(현지시각)까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다쏘시스템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6' 행사에서 이같은 내용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황 CEO는 "전 세계적으로 재산업화가 일어나면서 반도체 공장과 슈퍼컴퓨터 공장, AI 팩토리 건설이 급증하고 있다"라며 "미래의 모든 공장은 버추얼 트윈과 고성능 컴퓨팅을 기반으로 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쏘시스템은 이번 협업을 계기로 산업 월드 모델(Industry World Model)을 구현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른바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AI'다.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범용 AI와 달리 물리적 법칙을 이해하고 제조 지식을 갖춘 모델로, 실제 산업 현장에 바로 적용 가능하다. 앞서 젠슨 황 CEO가 차세대 AI 격전지로 지목한 피지컬 AI와 비슷한 개념이다.
파스칼 달로즈 다쏘시스템 최고경영자(CEO)는 "AI는 이제 단순히 예측하거나 생성하는 단계를 넘어,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라며 "엔비디아와 함께 버추얼 트윈과 가속 컴퓨팅을 결합한 산업 월드 모델을 구축해 생명과학, 소재 과학, 엔지니어링, 제조 분야의 복잡한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설계·시뮬레이션·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다쏘시스템, 엔비디아 손잡고 미래 공장의 '두뇌' 구현
엔비디아는 AI 열풍이 촉발한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을 기회로 보고, 앞으로 10년간 지어질 AI 팩토리(AI 특화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GPU를 공급하고, 다쏘시스템의 버추얼 트윈 기술을 접목한 산업용 AI 플랫폼과 운영체제(OS) 시장을 선점한다는 구상이다. 그 일환으로 엔비디아는 지난달 독일 지멘스와 산업용 AI 협력을 발표한 데 이어 이번에 다쏘시스템과 'AI 동맹'을 맺은 것으로 분석된다. 모두 산업용 소프트웨어에 강점을 지닌 기업들이다.
황 CEO는 "AI는 물, 전기, 인터넷처럼 모든 산업의 기반이자 인프라가 될 전망이다"이라며 "앞으로 10년간 AI 인프라 확장에 85조~100조달러가 투입되면서 AI 칩을 만드는 반도체 공장, 칩을 조립하는 슈퍼컴퓨터 공장, 그리고 실제 AI를 생산하는 AI 팩토리까지 3대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가 주도하는 전례 없는 규모의 산업 인프라 확장이 제조 공정의 판도도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1기가와트(GW) 규모의 AI 팩토리 하나를 짓는데 약 500억달러(약 72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거액이 투입되는 만큼, 공장 착공 전후에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운영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필요성이 커졌다.
황 CEO는 "AI 팩토리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시설을 짓기 전에 가상 환경에서 미리 공장을 설계·시뮬레이션·검증·운영하면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라며 AI 기반 버추얼 트윈이 필수 기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쏘시스템이 강점을 지닌 버추얼 트윈은 가상 공간에 현실 속 사물의 '쌍둥이'를 만들어 시뮬레이션 해보고 이를 기반으로 결과를 미리 예측해 제품·서비스를 최적화하는 데 사용된다.
앞으로 모든 공장의 설계와 운영이 AI 기반 버추얼 트윈 안에서 이뤄지고, 버추얼 트윈은 엔비디아의 최신 GPU 기반 가속 컴퓨팅을 기반으로 가동될 것으로 양사는 전망했다. 황 CEO는 "세계 최대 시장은 정보와 물리적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라며 "90조달러(약 12경원) 규모의 이 시장을 직접적으로 다루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모든 AI 기회를 통틀어 가장 크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 "모든 엔지니어, AI 동반자 갖게 될 것"…소프트웨어 종말론 반박
이번 행사에서 다쏘시스템은 '버추얼 동반자(virtual companion)' 개념을 소개했다. 엔지니어를 포함한 작업자의 업무를 돕는 일종의 'AI 비서'다.
달로즈 CEO는 "AI는 블랙박스도, 자동 조종 장치도 아닌 동반자"라며 자사 대표 3D(3차원) CAD(컴퓨터 지원 설계) 플랫폼 솔리드웍스에 접목한 버추얼 동반자 '아우라(AURA)', '레오(LEO)', '마리(MARIE)'를 소개했다. 작업자가 AI 챗봇과 대화하듯 채팅창에 요청 사항을 입력하면 이들 버추얼 동반자는 작업자가 보유한 설계안, 문서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토대로 새로운 설계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우라'는 챗GPT나 제미나이 등 시중에 출시된 인기 챗봇처럼 아이디어 탐색을 돕고 '레오'는 보다 구체적인 엔지니어링과 추론을 담당한다. '마리'는 소재, 화학, 미생물학 등 과학적 지식을 다룬다.
다쏘시스템은 고도화된 AI 비서가 엔지니어의 역량을 키워주는 도구일뿐, 엔지니어의 일자리를 뺏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AI는 엔지니어를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엔지니어의 역량을 증폭시키는 '포스 멀티플라이어(force multiplier)'"라며 AI가 산업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엔지니어의 창의력과 판단력은 필수라고 했다. 마니쉬 쿠마 솔리드웍스 CEO도 "AI는 엔진일 뿐, 어디로 갈지 정하는 운전자는 엔지니어"라고 했다.
젠슨 황 CEO도 최근 부상한 '소프트웨어 종말론'에 대해 "완전히 틀렸다"고 반박했다. 최근 앤트로픽이 AI 모델 '클로드' 기반 법률 업무를 추가한 이후 AI가 소프트웨어와 관련 도구들을 대체할 것이란 공포가 미국 증시를 덮치면서 주요 소프트웨어 기업의 주가가 줄줄이 하락했다. 그는 "모든 엔지니어와 창작자는 업무를 돕는 AI 동반자를 갖게 될 것이고, AI 동반자가 각종 소프트웨어 도구를 활용하면서 도구 사용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