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제미나이

구글이 텍스트·이미지·영상 생성을 넘어 '가상 세계'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AI) 영역으로 보폭을 넓히며 오픈AI와의 경쟁에서 한발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생성형 AI 시장에서 '패스트 팔로어'로 평가받던 구글이, 기술력 측면에서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 프롬프트로 가상 세계 구현… 월드 모델 상용화 첫발

30일 구글 딥마인드에 따르면, 최근 텍스트나 이미지 입력만으로 사용자가 직접 탐색하고 조작할 수 있는 가상 세계를 생성하는 실험적 AI 도구 '프로젝트 지니'(Project Genie)를 일부 제미나이 유료 구독자를 대상으로 공개했다. 연구용 프로토타입 성격이지만, AI가 단순히 결과물을 보여주는 수준을 넘어 공간·환경·상호작용이 가능한 세계를 실시간으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프로젝트 지니는 구글의 최신 월드 모델 '지니 3(Genie 3)'를 중심으로 이미지 생성 모델 '나노 바나나 프로', 대규모언어모델(LLM) '제미나이'를 결합해 작동한다. 이용자는 텍스트로 환경과 캐릭터를 설명하거나 사진을 입력해 기본 이미지를 만든 뒤, 이를 토대로 1인칭 또는 3인칭 시점에서 이동·탐색이 가능한 세계를 생성할 수 있다. 이미 만들어진 세계를 변형하거나 다른 이용자의 결과물을 재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프로젝트 지니 화면./구글 딥마인드 블로그 갈무리

이 기술의 핵심은 '월드 모델'이다. 월드 모델은 AI가 가상의 환경을 내부적으로 구성하고, 그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화를 예측하며 행동을 계획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딥마인드를 포함한 주요 AI 연구진은 월드 모델을 범용 인공지능(AGI)으로 가는 핵심 단계로 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게임·엔터테인먼트 분야, 중장기적으로는 로봇이나 에이전트 학습을 위한 시뮬레이션 시장까지 확장할 수 있다.

월드 모델을 둘러싼 경쟁은 최근 빠르게 가열되고 있다. 'AI 대모'로 불리는 페이페이 리 스탠퍼드대 교수가 설립한 월드랩스(World Labs)는 상업용 월드 모델을 선보였고, AI 영상 생성 스타트업 런웨이(Runway) 역시 유사한 기술을 공개했다. 메타 전 최고과학자 얀 르쿤이 참여한 AMI 랩스도 월드 모델 개발을 주요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지니 3는 사용자의 이동과 상호작용에 따라 앞의 경로를 실시간으로 생성하는 월드 모델"이라며 "프로젝트 지니는 이런 기술을 보다 많은 이용자가 직접 경험하도록 접근성을 넓히기 위한 다음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현실 세계를 탐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범용 인공지능을 향한 중요한 과제이며, 월드 모델은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제미나이 생태계 확장 속도… 사용자 지표도 빠른 성장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프로젝트 지니는 현재 한 세션당 약 60초 분량의 세계 생성과 탐색만 허용한다. 지니 3가 자동회귀(auto-regressive) 구조를 사용하는 탓에 상당한 연산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사실적 세계보다는 애니메이션·클레이메이션·수채화풍 등 비현실적이고 창의적인 세계 구현에 강점을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상호작용 과정에서 물체를 통과하거나 조작이 매끄럽지 않은 경우도 관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이 같은 시도가 갖는 방향성에 주목하고 있다. 챗봇 중심의 생성형 AI 경쟁을 넘어, AI가 '경험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구글은 월드 모델을 제미나이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으로 꼽힌다.

제미나이는 최근 사용자 지표에서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챗GPT의 글로벌 월간활성이용자 수(MAU)는 약 8억1000만명, 제미나이는 6억5000만명으로 격차가 1.25배 수준까지 줄었다. 분기 성장률은 챗GPT가 5%에 그친 반면 제미나이는 30%에 달했다. 웹 트래픽 점유율에서도 챗GPT가 하락세를 보이는 동안 제미나이는 세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의 배경으로 구글 생태계와의 결합을 꼽는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비롯해 지메일, 독스, 노트북LM, AI 스튜디오 등 수십억명이 사용하는 서비스에 제미나이가 기본 탑재되면서 진입 장벽을 사실상 제거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자체 TPU(구글 전용 반도체칩) 기반 인프라를 활용해 추론 비용을 낮추고, 공격적인 할인과 번들링 전략으로 유료 전환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 구글은 최근 월 1만원대 수준의 제미나이 저가 요금제를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70여개국으로 확대했다. 기존 프로 요금제 대비 기능은 일부 제한되지만, 무료 이용자와의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이용자 기반을 빠르게 넓히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