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SK하이닉스 이천 M16 공장 전경./각사 제공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수요에 힘입어 나란히 역대 최대 규모의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이례적으로 같은 날 진행된 실적 발표 행사에서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HBM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SK하이닉스는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레이스 합류에 대해 경쟁 우위를 자신했고, 삼성전자는 올해 AI 메모리 최대 승부처인 HBM4 제품의 성능, 품질 우위를 강조했다.

29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25년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한 시간 간격으로 나란히 진행했다. 두 회사가 같은 날에 실적발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무엇보다 최근 두 회사가 업계 최대 '큰 손'인 엔비디아에 대한 HBM4 공급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업계의 이목이 쏠렸다.

포문은 SK하이닉스가 먼저 열었다. 삼성전자보다 1시간 앞서 실적 발표 행사를 진행한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된 상황에 대해 "단순히 기술을 앞서는 수준을 넘어, 그동안 축적한 양산 경험과 고객 신뢰는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HBM은 기술뿐 아니라 양산성과 품질, 공급 이행 능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제품"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업계에서는 지난 수년간 SK하이닉스에 HBM 주도권을 내줬던 삼성전자가 최근 엔비디아를 브로드컴 등 미국 주요 고객사에 HBM 공급 규모를 늘리고 있으며, 이르면 내달부터 차세대 HBM인 HBM4 공급을 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또 삼성전자의 HBM4는 고객사의 목표 성능을 초과 달성하며 우려됐던 성능, 품질 이슈를 완전히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이를 의식한듯 "HBM4 역시 역시 고객과 협의한 일정에 맞춰 예정대로 준비하고 있으며, 고객이 요구한 물량에 대해서는 이미 양산을 진행 중"이라며 "기존 10나노 5세대(1b) 공정 기반 제품에서도 고객 요구 성능을 충족하고 있으며, 자사의 패키징 기술 경쟁력이 HBM4에서도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도 강하게 응수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HBM4 양산을 진행 중이며 2월부터 출하할 예정"이라고 구체적인 일정을 공개했다. 또 "개발 착수 단계에서부터 지금까지 고객들의 성능에 대한 요구 수준이 상향 조정됐음에도 재설계 없이 진행해 왔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굳이 '재설계' 이슈를 꺼낸 것에 대해 SK하이닉스를 직간접적으로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앞서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로부터 HBM4 샘플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제품 개발, 양산 과정에서 일부 공정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경우 상향조정된 HBM4 사양을 문제 없이 통과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두 회사 모두 올해 HBM 시장 수요가 견조하게 이어질 것으로 관측했다. AI 메모리 호황이 연내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메모리 시황은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만 업계 공급 능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극심한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며 "대부분 고객이 메모리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공급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 시장 전반에 대해서는 AI 중심 구조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AI응용 확대로 메모리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업계 전반의 공급 확대 여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HBM, D램, 낸드 전반에서 수요 대비 공급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