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태계가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변화와 함께, 그동안 부진을 겪어왔던 국내 디자인하우스들의 양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재개되며 실적 반등이 가시화되고 있어서다. 파운드리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가 설계한 칩을 위탁받아 실제 웨이퍼로 생산하는 사업을 뜻하며, 디자인하우스는 해당 설계를 파운드리 공정에 맞게 최적화하고 시제품 제작부터 양산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28일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에이디테크놀로지, 가온칩스, 세미파이브 등 국내 주요 디자인하우스 3사는 2026년 평균 매출 성장률 70.4%, 총매출 5975억원, 영업이익 481억원 규모의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 세미파이브의 양산 매출은 214억원에서 1026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개발·설계 단계에 머물던 프로젝트들이 양산 단계로 전환되며 매출화한 것으로, 삼성 파운드리 공정을 전제로 한 설계·양산 생태계가 회복 중임을 보여준다.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올해 매출 2207억원, 영업이익 163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됐다. 매출은 전년 대비 40.4%, 영업이익은 526.9% 증가한 수치다. 소테리아의 4나노미터(nm) AI 칩과 자람테크놀로지의 14나노 통신 칩 양산이 예정돼 있다. 삼성 파운드리 디자인하우스로 전환한 이후 첫 양산 성과다.
가온칩스도 올해 매출 1078억원, 영업이익 87억원을 거둘 것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78.2%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1년 만에 흑자로 전환될 것으로 분석됐다. 첫 2나노 프로젝트인 일본 프리퍼드 네트웍스(PFN)의 AI 칩은 하반기 양산이 예상된다.
최근 상장한 세미파이브 역시 올해 매출 2690억원, 영업이익 231억원으로 추정됐다. 매출은 92.5%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지난해 338억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주요 양산 칩은 한화비전의 8나노 AI 칩, 하이퍼엑셀의 4나노 추론용 AI 칩, 중국 증강현실(AR) 글라스 업체의 디스플레이 구동칩(DDIC) 등이다.
디자인하우스들의 양산 프로젝트가 잇따르며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삼성 파운드리 경쟁력 회복의 지표다. 그동안 수주 위축과 양산 지연으로 실적 부진을 겪어왔던 디자인하우스들이 올해를 기점으로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면서, 삼성 파운드리 공정이 다시 실질적인 양산 옵션으로 선택되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AI 주문형 반도체(ASIC) 시장의 성장도 삼성 파운드리에 추가적인 수주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인피니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AI ASIC 시장은 2024년 이후 연평균 35.9% 성장해 2025년 383억달러, 2027년 704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자율주행·추론용 AI 칩을 자체 설계하면서, TSMC 등 단일 파운드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점도 업계 2위 삼성 파운드리가 재부상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 수주 회복이라기보다, 설계부터 양산까지 이어지는 파운드리 생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신호"라며 "디자인하우스의 실적 반등은 삼성 파운드리 경쟁력이 실제 물량 기준으로 검증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