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 조작으로 100억원대 과징금 맞고도 바뀐 게 없네요. 이용자를 만만하게 보는 게 아닌가요?"
넥슨의 인기 모바일 게임 '메이플 키우기'가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조작 의혹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강대현·김정욱 넥슨코리아 대표이사가 사과문을 올리고 보상과 함께 '담당자 해고'를 포함한 후속 조치를 약속했지만, 넥슨의 확률 조작 논란이 처음이 아닌지라 이용자 불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넥슨의 장수 게임 '메이플스토리'는 확률형 아이템 판매 관련 거짓·기만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16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넥슨의 지식재산권(IP) 확장 성공 사례로 꼽히는 '메이플 키우기'도 같은 방식으로 이용자를 기만했다는 논란이 확산하면서 게임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돈 썼는데 성능 그대로"…신뢰 시험대 오른 '메이플 키우기'
28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강대현·김정욱 넥슨코리아 공동대표는 지난 26일 저녁 '메이플 키우기'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에서 "유저분들께 큰 실망을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밝혔다.
'메이플 키우기'에서는 지난해 11월 6일부터 12월 2일 오후 6시 27분까지 약 한 달간 유료로 획득하는 '어빌리티(능력치) 옵션'의 최대 수치가 안내된 확률대로 등장하지 않는 오류가 발생했다. 어빌리티 옵션이란 게임 속 캐릭터에 붙는 추가 능력치로, 유료 재화인 '명예의 훈장'을 소모해 무작위로 변경할 수 있다.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게임 출시 초기부터 "거듭된 능력치 재설정 시도에도 최대 수치가 나오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관련 사례가 커뮤니티와 영상을 통해 공유된 바 있다. 그러나 '메이플 키우기' 측은 이용자들의 문의에도 "게임 내에서 정해진 확률에 따라 결과가 결정되는 구조"라고 대응했고, 담당 부서는 이후 별다른 안내나 보상 없이 수정 패치(오류 해결)를 단행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어빌리티 계산식에서 최대 수치 등장 확률이 '이하'로 설정돼야 하지만, '미만'으로 잘못 설정돼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넥슨 측 설명이다. 이 경우 이용자들이 아무리 과금해도 최대 수치를 얻을 수 없다. 넥슨 경영진은 지난 25일에서야 이 사안을 뒤늦게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커지자 넥슨 경영진은 "이번 일은 유저분들의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게임회사에서 믿음을 저버리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메이플 키우기' 담당 책임자에게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해고를 포함한 모든 징계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앞으로 넥슨이 서비스하는 모든 게임에서 유저들의 신뢰를 훼손하는 경우 투입된 비용을 넘어서는 최대치의 보상안을 제공하는 원칙을 세우겠다"고 했다.
넥슨은 문제 발생 기간 어빌리티 재설정을 위해 재화를 소모한 이용자에게 사용한 '명예의 훈장'을 100% 환급하고, 유료로 구매하는 데 쓴 재화의 200%를 지급하기로 했다. 또 전체 이용자에게 사과의 뜻을 담아 게임 아이템을 보상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확률 조작 논란 직전에도 '메이플 키우기'는 게임 속 캐릭터의 '공격 속도' 수치가 일정 구간 이상에서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이용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이용자들은 과금을 통해 공격 속도를 높였는데도 공격 속도가 66%가 넘어가는 구간에서는 실제 성능에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사실이 공론화되자 넥슨은 "기기 발열과 화면 끊김을 방지하기 위해 초당 최대 프레임 수를 제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기술적 문제"라고 해명했다. 넥슨은 오는 29일 업데이트를 통해 해당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 "넥슨, 소비자 기만 여전" 이용자 반응 냉랭
넥슨의 대응에도 이용자들은 확률 조작 문제가 수년째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메이플 키우기' 같은 역할수행게임(RPG) 이용자들은 캐릭터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무기·동료 뽑기나 큐브 등 유료 재화에 상당한 비용을 투입한다. 일명 '헤비 유저(열성 이용자)'는 과금에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쓰기도 한다.
과거 넥슨은 주력 IP인 '메이플스토리'에서 판매하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이용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고도 이를 알리지 않아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16억4200만원을 부과 받았다. 이는 전자상거래법 위반 행위로 역대 최대 과징금이다.
넥슨은 지난 2010년 '메이플스토리'에 캐릭터 능력치를 높일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인 '큐브'를 도입했다. 큐브는 메이플스토리 전체 매출액의 약 30%를 차지하는 최대 수익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넥슨은 같은 해 9월 이용자가 선호하는 인기 옵션이 나올 확률을 낮추는 식으로 확률 구조를 바꾸고, 이를 공지하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특정 옵션이 아예 나오지 않도록 설정해놓고 "큐브의 기능에 변경사항이 없고 기존과 동일하다"며 거짓 공지까지 했다.
공정위는 이용자 기만 기간이 10년으로 길다는 점을 반영해 1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원하는 옵션을 뽑기 위해 큐브 구매에만 1년에 2억8000만원을 쓴 이용자도 있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원하는 옵션이 나올 때까지 반복구매하는 상품이다 보니 확률 조정이 과잉 지출을 유발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넥슨은 지난 2018년 '서든어택'에서 판매하던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한 거짓·기만행위에 대해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메이플 키우기' 이용자들은 넥슨의 운영 방식이 '소비자 기만'이라며 환불 요구와 함께 공정위와 한국소비자보호원,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등에 집단 민원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철우 게임 전문 변호사 겸 게임이용자협회장은 "공정위에 전자상거래법 위반으로 신고를 할 예정이고 현재 1200명의 이용자가 동참 의사를 밝혔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확률을 표시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표시해 게임 이용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책임을 물도록 하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 개정안이 지난해 시행되는 등 정부의 확률 조작 대응이 강경해지면서 넥슨도 이번에 서둘러 사과문을 올리고 보상 공지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이번 '메이플 키우기' 논란이 넥슨이 공정위를 상대로 진행 중인 과징금 취소 소송 결과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넥슨은 116억원 규모 '메이플스토리'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공정위와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달 28일로 예정됐던 1심 판결이 선고를 하루 앞두고 연기된 데 이어 재판부가 사건을 다시 심리하는 '변론 재개'를 결정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재판부가 선고를 하루 앞두고 변론재개를 결정한 것이 이례적인데, 이번 '메이플 키우기' 논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변론기일이 3월 18일로 정해진 만큼, 1심 선고도 3월 말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넥슨이 외부 개발사인 에이블게임즈와 공동 개발한 '메이플 키우기'는 출시 직후 양대 앱 마켓에서 매출 1위를 기록하는 등 흥행 중이다. 출시 45일 만에 매출 1억달러(약 1400억원), 누적 이용자 수는 2개월 만에 300만명을 돌파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메이플 키우기'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만큼, 넥슨이 확률 조작 논란을 딛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