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대란으로 IT·완제품 수요가 둔화하면서 반도체 업계도 기업 간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상당수 시장조사업체들은 메모리 가격 상승 여파로 스마트폰 판매량이 최소 2%, PC·게임기 판매량도 각각 5% 감소할 것으로 관측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퀄컴, 미디어텍 등 주요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의 실적 전망에 대해 부정적인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기업 대만 미디어텍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스마트폰용 AP 비중이 전체 매출의 53%에 달한다. 스마트폰 원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품 중 하나인 AP 출하량 감소에 미디어텍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디스플레이용 구동 칩(DDI)을 비롯해 통신, 전력 등 다양한 반도체 기업들도 모바일 시장 위축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DDI의 경우 LX세미콘이 스마트폰용 DDI 매출 감소를 IT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으로 상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대만 노바텍 역시 수요 감소에 시달릴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소비자·IT용 칩 비중이 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들의 실적도 변수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완제품 수요가 줄어들 경우 레거시(구형) 칩이 먼저 재고 조정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칩을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기업들이 한파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TV용 DDI, 전력관리 칩(PMIC) 등 구형 칩을 생산하는 200㎜(8인치) 비중이 높은 DB하이텍은 레거시 칩 주문 감소, 단가 압박 등의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스마트폰, PC뿐만 아니라 자동차 시장도 메모리 대란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자, IT 기업뿐 아니라 자동차 기업들 역시 메모리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해당 분야의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자동차 기업들은 메모리 재고 부족이 장기화할 것을 대비해 차 부품 설계까지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 대표적인 자동차 칩 기업 중 하나인 독일 인피니언은 '대부분의 엔드마켓에서 약한 수요'를 이유로 비용 절감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자동차·산업 고객이 재고를 보수적으로 관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인 NXP는 최근 자동차 부문 매출이 감소하면서 자동차 고객들이 주문을 줄일 가능성을 언급했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차량용 칩 기업인 르네사스 역시 칩 수요 둔화 속에 인력 감축을 밝힌 바 있다.
한편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 범용 D램 가격이 전분기 대비 55~60%, 낸드플래시는 33~38%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대만의 PC 위탁생산 기업인 컴팔은 "메모리 대란이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까지 업계를 압박할 수 있다"며 "PC 원가 내 메모리 비중이 기존 15~18% 수준에서 35~40%까지 커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