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추진과 더불어 올해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달군 최대 화두는 '인공지능(AI)'이었다. 그동안 다보스포럼이 "지루하다"면서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부터 인공지능(AI) 칩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까지 미국 빅테크 기업 수장들이 올해 행사에 참석해 AI 산업의 현주소와 전망을 내놓았다.
이들은 인간 수준의 지능에 맞먹는 범용인공지능(AGI) 도달 시점과 AI 거품론, AI가 일자리에 미칠 영향을 두고 각기 다른 의견을 냈다. 이런 엇갈린 진단에서 각사의 전략을 살펴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머스크 "휴머노이드 로봇이 일하고 인류는 풍요롭게 살 것"
머스크 CEO는 올해 처음 참석한 다보스포럼에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AI 낙관론'을 펼쳤다. 그는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과의 대담에서 "어쩌면 올해 말 인간보다 똑똑한 AI가 등장하고, 5년 안에는 AI가 인류 전체의 집단 지성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AI의 성능이 빠른 속도로 좋아지면서 휴머노이드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피지컬 AI 시대도 도래할 것이라고 봤다.
특히 AI와 로보틱스(로봇공학)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했다. 머스크 CEO는 "무료에 가까운 AI와 결합한 로봇이 등장한다면 전례를 뛰어넘는 수준의 글로벌 경제 폭발이 일어날 것이고, 모두를 위한 풍요로움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래에는 로봇의 수가 사람의 수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며 로봇이 산업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젊은 인구가 줄어드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을 돌보는 일을 담당해 낮은 비용으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로봇의 대중화 시점을 묻는 핑크 회장의 질문에는 "아마도 내년 말쯤에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일반 대중에게 판매할 것"이라고 답했다. 머스크 CEO는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가 "이미 공장 내 단순 작업에 일부 활용되고 있고, 올해 말부터는 더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옵티머스가 향후 테슬라 기업가치의 80%를 차지할 것이라고 보고 로봇 개발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머스크 CEO가 이끄는 생성형 AI 스타트업 xAI도 수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회사 측은 그 이유로 옵티머스와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구동할 AI를 구축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AGI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는 인간 수준의 AGI가 "5~10년 안에 등장할 가능성을 50%로 본다"고 예상했다. 그는 AGI를 인간의 인지 능력을 모두 재현할 수 있는 AI 시스템으로 정의했는데, 현재 AI는 지속적 학습, 장기 계획·추론 능력, 창의성 등의 역량이 부족해 인간 지능과는 "거리가 멀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AGI를 실현하려면 단순히 현재의 AI 모델을 더 크고 빠르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AGI를 마케팅 용어로 소비해서는 안된다"며 AI 산업 관련 장미빛 전망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의 AI 최고과학자 출신인 얀 르쿤 뉴욕대 교수는 단기 내에 AGI 실현 전망에 반박했다. 그는 생성형 AI의 기반이 되는 거대언어모델(LLM)는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 수준의 추론 능력을 갖출 수 없다며, 현실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황을 인식하고 예측하는 '월드 모델'을 개발하지 않으면 AGI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AI 4대 석학' 중 한명으로 꼽히는 르쿤 교수는 월드 모델 연구와 상용화에 주력하는 AI 스타트업 '어드밴스드머신인텔리전스랩스(AMI랩스)'를 설립하기 위해 자금 조달에 나섰다.
◇ "AI, 6개월 안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대체" 전망도
AI가 일자리에 미칠 영향과 AI 거품 우려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오픈AI 대항마'로 불리는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2026~2027년이면 노벨상 수상자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춘 AI 모델이 등장할 것"이란 기존 견해를 유지했다.
그는 AI가 인간 수준으로 똑똑해지면서 화이트칼라 지식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아모데이 CEO는 "AI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업무 대부분을 수행하게 되는 시점까지 불과 6개월에서 12개월 남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앤트로픽 내부 활용 사례를 들며 "엔지니어들이 직접 코드를 짜지 않고 AI에 시킨 뒤 수정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스스로 코드를 짜고 연구를 수행해 더 나은 모델을 만드는 '루프(loop)'가 닫히는 순간이 오면 발전 속도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를 것"이라고 했다.
허사비스 CEO도 "올해부터 신입사원과 인턴십 일자리에 AI의 영향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구글 딥마인드도 신입 채용이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반면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AI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란 주장에 반박했다. 그는 "AI 열풍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프라 구축을 시작하게 했다"라며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대규모 AI 투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데이터센터 건설 수요 덕분에 배관공이나 전기 기사, 건설 노동자들이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간호처럼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분야에서는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AI가 단일 기술이 아니라 에너지, 칩·컴퓨팅 인프라,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AI 모델, 애플리케이션 등을 아우르는 5단계 산업이고, 모든 단계를 구축하고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건설업, 제조업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황 CEO는 시장에서 제기하는 'AI 거품론'도 일축했다. 그는 "AI 거품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투자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라며 "지금까지 수천억달러를 투입했지만, 추가로 수조달러를 들여 AI 인프라를 증축해야 한다"라고 했다. 나아가 "AI는 전기나 도로처럼 모든 국가가 갖춰야 할 필수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다른 수장들은 AI 산업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고 인정했다. 브렛 테일러 오픈AI 이사회 의장은 "AI 산업에 아마도 거품이 끼었겠지만 이는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경쟁자가 많으면 최고의 제품을 선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며 AI 산업이 조정과 '옥석 가리기'를 거치고 나면 오픈AI의 진가가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허사비스 CEO는 "아무런 제품이나 기술이 없는 신생 스타트업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초기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는데,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라며 일부 AI 투자가 거품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구글의 자금력과 기술력이 경쟁사를 압도하는 데다 AI 모델 '제미나이3'의 수요가 견고해 "(나중에) 거품이 터지더라도 구글은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