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제품 규모 측면에서 8.6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도입으로 올해 정보기술(IT)용 패널 분야 사업이 작년 대비 20~3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이청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아직 8.6세대 IT OLED 패널 생산 시설 투자로 수익을 만들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니다."(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수장은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6'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청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만큼 올해 (8.6세대 IT OLED를) 제대로 성공시키는 게 중요하고, 사업 확장이 이뤄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며 "올 옥사이드(All-oxide) 기술을 적용해 경쟁사 대비 강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올 옥사이드 기술은 OLED의 '구동 회로층'을 산화물 반도체 박막 트랜지스터(TFT) 중심으로 구성, 기존 대비 대면적 IT 패널에 더 적합한 기술로 꼽힙니다. 이 사장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IT OLED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한 셈이죠.
반면 LG디스플레이는 8.6세대 IT용 OLED 진출에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은 "태블릿·노트북·모니터 등 제품마다 액정표시장치(LCD)에서 OLED로 전환하는 속도가 달라 8.6세대 IT OLED 시장은 아직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 규모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투자를 한다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기존 인프라인 6세대로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장 규모가 마련되면 여러 방법을 통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8.6세대 IT OLED 패널 투자에 엇갈린 행보를 보이면서 그 배경에 시장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23년 4월 4조1000억원을 투자해 월 1만5000장 규모의 생산 라인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 15일 8.6세대 생산 라인이 있는 아산 사업장에서 제품 출하와 생산 라인의 성공적인 가동을 기원하는 '출하식 및 안전 기원 행사'를 열었는데요.
삼성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중국 BOE도 630억위안(약 11조4000억원)을 투자해 월 3만2000장 규모의 생산 라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CSOT도 8.6세대 OLED 라인 착공식을 진행하며 시장 진입을 예고했습니다. 주요 패널 제조사의 양산 체제 구축에 속도가 붙고 있음에도 LG디스플레이는 아직 이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내놓지 않은 상태입니다. 같은 양산 기술인데도 투자에 왜 이런 '온도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 '고객사 확보' 구조가 투자 차이 만든 배경?
8.6세대 IT OLED는 노트북·태블릿·모니터와 같은 기기에 탑재되는 패널을 대형 유리 원장(마더글라스)에서 생산하는 공정을 말합니다. 업계에서는 공장에서 한 번에 처리하는 유리 기판의 규격을 세대별로 구분하는데, 8.6세대는 통상 2290㎜×2620㎜급 원장을 의미합니다. 이는 기존 6세대 OLED보다 유리 원판 크기가 2배 이상 큽니다.
한 번의 공정을 통해 더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생산 원가를 대폭 낮출 수 있어 '가격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대규모 투자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장기적 이익을 올릴 수 있다면 8.6세대로 전환하는 게 유리해 보입니다. 그러나 업계 설명을 들어보면 이 논리가 모든 회사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디스플레이는 기업간거래(B2B) 산업이라, 물건을 사줄 고객사가 있어야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회사마다 확보한 고객사가 달라 8.6세대 IT OLED 투자에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현재 중소형 OLED 패널을 주로 6세대 공정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양사 모두 이 공정을 통해 스마트폰은 물론 IT 기기 패널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는 비교적 확실한 모바일 수요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증권가 추정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연간 수억대 규모의 스마트폰 패널 물량을 삼성전자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반면 LG디스플레이는 관계사인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접으면서 삼성디스플레이와는 사업 구조에 차이가 있습니다. 모바일용 OLED 패널 수요를 사실상 애플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삼성디스플레이에 비해 스마트폰 고객사가 한정적인 LG디스플레이는 6세대 전체 생산량 중 IT용 패널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6세대와 8.6세대 차이는 '원장 크기'에 따른 생산 효율성 정도밖에 없습니다. LG디스플레이가 8.6세대로 전환하지 않더라도 고객사의 수요가 있다면 IT용 OLED 패널을 공급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 셈입니다. 권장혁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장(경희대 교수)은 "6세대는 모바일 패널에 특화돼 있고 8.6세대는 IT 기기에 적합하지만, 출하된 패널에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8.6세대가 주목받고 있는 건 IT 기기뿐 아니라 소형 모니터까지 대응할 수 있으면서, 생산 효율성을 큰 폭으로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작년 1분기 기준 OLED 패널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전체의 63%로 집계됐습니다. 액정표시장치(LCD)에서 OLED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물론 애플까지 주요 고객사로 확보한 삼성디스플레이로선 한정된 6세대 생산량을 모바일 수요 대응에 쓰고 싶을 것"이라며 "스마트폰처럼 향후 LCD에서 OLED로 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IT 기기 시장에 대응할 여력도 있어 8.6세대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LG디스플레이는 모바일 패널 공급량이 삼성디스플레이에 비해 유동적이라 6세대 생산 라인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그간 양산 난도가 높은 중소형 OLED 패널 생산 라인을 사실상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시장에 진입하는 단계라 가장 최신 양산 기술인 8.6세대 공정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 엇갈린 시장 전망… "LG디스플레이도 결국 진입할 것"
시장 전망에 대한 엇갈린 시선도 LG디스플레이의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8.6세대 IT OLED 라인이 6세대 대비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본격적인 양산 후에도 1년 6개월에서 2년은 걸릴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그만큼 최적화까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셈이죠. 옴디아도 노트북·태블릿이 OLED 패널로 전환되면서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2030년 전체 IT 패널 시장에서 OLED가 차지하는 비율이 10% 안팎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현재로선 뚜렷한 고객사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힙니다. 8.6세대가 IT용 OLED 패널 가격을 지금보다 낮추더라도 LCD보다는 가격이 높을 전망입니다. 이를 탑재한 IT 기기의 가격 역시 오를 수밖에 없죠. 업계에서는 높아진 가격에도 소비자 수요를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은 애플과 삼성전자 정도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애플이 가격·기술적 문제 때문에 OLED 탑재 맥북 출시를 당초 2026년 말에서 2027년 초로 늦출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BOE·CSOT가 순차적으로 8.6세대 패널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IT 기기도 스마트폰처럼 결국에는 OLED 패널로 전환될 전망이라, LG디스플레이의 진입은 기정사실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권 학회장은 "IT 기기에도 플렉서블 OLED 패널 등이 접목되려면 8.6세대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미 후발 주자인 LG디스플레이도 진입 시점이 문제이지 결국에는 8.6세대로 전환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쟁사 대비 진입이 늦어져 시장 선점 효과는 누리지 못하겠지만, 양산 기술 측면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