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 감소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국내 게임사들이 신작 라인업 확대에 나섰다. 크래프톤,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대표 게임사들은 신년을 맞아 회사의 성장을 견인할 차세대 지식재산권(IP)을 발굴하기 위해 자체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국내외 유망 게임사 투자와 인수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시대 바뀐 제작 환경에 맞춰 신작을 더 자주, 빨리 출시하고 게임 장르도 다변화해 추가 이용자 이탈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크래프톤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간 신작 12개를 선보인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중장기적으로는 총 26개의 신작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대표작인 배틀그라운드(PUBG)로 성장을 이어가는 동시에 '제2의 배그'로 거듭날 신작 IP를 키우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신작은 크래프톤 산하 16개 스튜디오 주도로 자체 제작 라인업을 확장하고 회사가 투자한 30여개 글로벌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IP의 퍼블리싱(유통·배급)을 늘리는 데 주력한다.
이를 위해 신작 개발을 지휘할 인재 15명을 지난해 영입했고, 올해는 이들을 중심으로 소규모 조직 단위의 제작 구조를 확대한다. 핵심 팬층 확보 여부를 기준으로 신작의 성공 가능성을 판단한 뒤 빠른 철수 또는 스케일업(확장)을 결정하는 '작고 빠른 신작 출시'로 비용과 리스크 최소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엔씨소프트도 올해 신년사에서 '신규 IP 확보'를 강조했다. 회사는 '리니지'로 대변되는 주력 장르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슈팅, 서브컬처, 캐주얼 게임 등 새로운 장르의 신작 개발과 출시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 15일에는 신규 IP 확보와 퍼블리싱 사업 확장을 목표로 서브컬처 전문 개발사 '디나미스 원'과 MMORPG 전문 개발사 '덱사스튜디오'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달에는 베트남 캐주얼 게임 전문 개발사 리후후를 인수해 신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지목한 모바일 캐주얼 게임 사업 강화에 나섰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공동대표는 신년사에서 "현재의 엔씨를 만들어온 레거시 IP의 가능성을 계속 확장하고, 스핀오프 게임·외부 협업으로 우리가 쌓아온 자산을 미래의 성장으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넥슨과 크래프톤에 이어 국내 게임사 중 세번째로 연 매출 3조원 달성에 가까워진 넷마블도 올해만 8종의 신작을 출시하며 글로벌 확장을 본격화한다고 발표했다.
게임사들의 적극적인 'IP 농사'는 게임 산업이 직면한 환경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게임 이용률은 50.2%로 해당 지표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 유튜브 쇼츠 등의 숏품(짧은 영상), 애니메이션, 웹툰 등 다른 여가 활동이 게임을 대체하기 시작한 영향이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이용자의 관심을 끌려면 이전보다 다양하고 참신한 게임을 더 빠르게 출시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반응이 좋은 게임은 신속하게 스케일업한 뒤 브랜드로 키워 이용자를 묶어두는 락인(lock-in·가두기) 전략으로 대응해야 견고한 팬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행보에는 주요 게임사의 실적과 주가 흐름에 대한 위기 의식도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단일 IP 의존도가 높고, 내년에 출시 예정인 신작 '서브노티카2' '팰월드 모바일' 등의 흥행 가능성 관련 불확실성에 주가가 이달 들어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 등 크게 조정을 받았다. 신작을 2년 내 12개 출시한다고 발표한 이후에도 크래프톤 주가는 23만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이는 공모가 49만8000원의 반토막 수준이다.
증권가에서 불확실한 신작 일정과 지난해 4분기 실적 부진을 들어 크래프톤의 목표주가를 줄하향하고 투자자 우려가 커지만, 크래프톤이 2026년 경영 전략 발표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아이온2'가 견조한 성과를 내면서 주가는 지난해 말에 비해 회복됐지만, 최근 몇 년간 MMORPG 중심의 수익 구조가 둔화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부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