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애초에 소프트웨어(SW)만 하는 나라가 아니다. 공장·장비·자동차·조선·인프라 등 '움직이는 것'에 강점이 있는 나라다. 피지컬 AI(Physical AI·자율주행차나 로봇 등 물리적 형태가 있는 AI)는 바로 이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게임 체인저다."
장영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제조 피지컬 AI 연구소 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피지컬 AI 시대에 제조업 혁신을 꿈꾸는 기업과 정부 관계자에게 "거대 언어 모델(LLM) 경쟁에서 뒤졌으니, 인공지능(AI)은 포기해야 한다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며 "피지컬 AI는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숙해 가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피지컬 AI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장 소장은 1조원대 규모 피지컬 AI 국책 사업인 '피지컬 AI 핵심 기술 실증(전북 특화 모델 개발)' 프로젝트의 연구 총괄을 맡고 있다. 장 소장은 "해당 프로젝트는 피지컬 AI 산업 생태계 모델을 만드는 시도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피지컬 AI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월드모델이 무엇인가.
"월드모델(물리법칙을 학습해 현실을 시뮬레이션하는 AI 모델)은 현실 세계의 동역학, 즉 공간 구조와 물리법칙, 시간에 따른 변화까지 내부에 압축해서 표현하는 신경망 모델을 말한다. 공장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다음에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공장의 두뇌이자, 시뮬레이션 엔진이 하나의 모델에 들어가는 개념이다.
제조 현장에서 월드모델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 번째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실제 건축물이나 공장과 동일한 디지털 모델)에서 수십만 번의 가상 실험을 통해 설비와 공정을 빠르게 학습해, 피지컬 AI가 공장에 투입되기 전 '실전 감각'을 갖추게 하는 역할이다. 두 번째는 현장에서 들어오는 실시간 데이터를 계속 반영해 현재 상태와 다음 상태를 추론해, 공정 조건 변화나 설비 이상을 미리 감지한 후 자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만든다. 궁극적으로 월드모델은 공장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강화학습 환경으로 바꾸고, 피지컬 AI가 '스스로 배우는 자율 제조 시스템'으로 진화하는 핵심 엔진이 될 것이다."
피지컬 AI가 제조업 혁신에 미칠 역할은.
"피지컬 AI가 이끄는 자율화된 제조는 공장이라는 물리적 세계를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해 최적의 행동을 선택하며 학습까지 수행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센서·카메라·로봇·설비에서 나오는 실시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정 상태를 이해하고 계획을 재수립해 사람 개입 없이 생산 조건과 작업 순서를 스스로 조정해 나가는 공장을 지향한다. 정해진 일을 반복하는 자동화에서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 일을 바꾸는 자율화로 진화하는 것이 피지컬 AI 제조의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제조업을 어떤 모습으로 바꿀까.
"그동안은 제조업을 주로 '제품을 만들어 파는 산업'으로 인식했다. 피지컬 AI가 성숙하면 제품 생산 자체보다 '어떻게 효율적으로·안전하게·유연하게 운영하는가'라는 운영 노하우가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런 노하우를 소프트웨어·플랫폼 형태로 수출하는 새로운 제조 모델이 등장할 수 있다. 가령 특정 국가·기업이 배터리 공장, 자동차 공장, 물류 센터 운영을 위한 피지컬 AI 플랫폼을 구축하면, 이 플랫폼을 다른 나라의 공장·도시에 복제하는 방식으로 '운영 기술'을 수출할 수 있다."
피지컬 AI가 적용될 산업 분야는.
"크게 세 범주로 예상한다. 첫째, 반도체, 배터리, 정밀 부품처럼 공정이 복잡하고 설비투자가 큰 하이테크 제조 분야다. 이런 영역은 다운타임(기계가 예상치 못하게 작동을 멈추는 시간)과 품질 편차에 따른 비용이 막대하므로 공장 단위 최적화와 자율 운영의 경제적 효과가 크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과 직결된 자동차·모빌리티, 물류·창고 산업이다. 이 분야는 로봇, 자율주행, 예측 유지·보수 등 피지컬 AI 요소 기술 통합을 통해 경쟁 우위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 셋째, 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파급력이 큰 의료·돌봄·서비스 로봇 분야다. 사람 노동력을 직접 대체·보완해야 하는 필연적 수요가 있다."
국내 제조업의 AI 활용률이 10%다. 피지컬 AI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과제는.
"제조 AI가 10% 정도만 성공했다는 건 나머지 90%는 파일럿(소규모로 시범 적용해 보는 단계)에서 멈추거나 운영에 정착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큰 장벽은 세 가지다. 첫째, 데이터와 공정이 계속 바뀌는 '노 스테디 스테이트(no steady state)' 환경에서 모델이 금방 노후하는 문제다. 둘째, 공장마다 데이터 구조와 현장 관행이 다른 '데이터 섬(Data Island)' 구조다. 셋째, 불량 데이터와 중요한 변수는 기록되지 않는 '숨은 변수' 문제다. 추가로 현장 운영과 분리된 특정 기능과 상황에서만 AI의 기술적 가능성을 검증하는 '포인트 AI 기술 검증(PoC)' 위주 접근도 성공 확률을 떨어뜨리는 이유다. 피지컬 AI 성공률을 높이려면 기술 자체보다 '운영 자동화 역량'을 먼저 정비해야 한다. 공장 내 주요 프로세스(생산·품질·설비·물류)를 표준화하고, 센서·설비·정보기술(IT) 시스템 간 데이터 흐름과 업무 흐름을 하나의 프로세스로 재설계 하는 '비즈니스 프로세스 관리(BPM)' 역량이 필수다. 또 디지털 트윈을 통해 공정 변경, 신규 제품 도입을 유연하게 실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현장 조직이 함께 성과를 공유하는 '공동 운영 조직'도 중요하다."
1조원대 피지컬 AI 국책 사업의 연구 총괄을 맡았다.
"피지컬 AI 핵심 기술 실증(전북 특화 모델 개발) 프로젝트는 단순한 연구 과제가 아닌 특정 지역을 피지컬 AI 리빙랩으로 만드는 국가 실험에 가깝다. 카이스트는 협업 지능 피지컬 AI라는 주제로 원천 기술과 플랫폼을 설계하고, 전북대·지자체·기업은 실제 공장·로봇·물류 환경에서 기술을 검증하는 구조로 진행한다. 이는 개별 기업의 PoC를 넘어 지역 단위 피지컬 AI 산업 생태계 모델을 만드는 시도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피지컬 AI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피지컬 AI 시대를 맞이하는 기업과 정부에 당부할 말은.
"LLM 경쟁에서 뒤졌으니, AI는 포기해야 한다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은 애초에 소프트웨어만 하는 나라가 아니다. 공장·장비·자동차·조선·인프라 등 움직이는 것'에 강점이 있는 나라다. 피지컬 AI는 바로 이 강점을 살릴 게임 체인저다. 피지컬 AI는개별 기업의 노력으로는 성공하기 힘든 만큼 정부와 지자체, 대기업·중견·중소기업, 대학· 연구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국가 단위의 플랫폼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은 '기술을 더 검토해 보자'는 단계가 아닌 '작게라도 공장과 도시에서 실험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피지컬 AI는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숙해 가는 기술이다. 실패를 전제로 한 테스트베드와 실증 사업을 과감하게 늘리고, 거기서 축적된 경험을 국가의 공통 자산으로 쌓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