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게이트 제공

새로 출시된 게임이 인공지능(AI)을 사용한 티가 난다면 이는 잘 만든 게임일까요? 최근 '게임 개발·제작 과정에서 AI를 어느 정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는 비용 절감과 제작 시간 단축을 감안하면 AI 활용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은 눈에 띄는 AI 사용이 몰입을 방해한다며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힌 프랑스 신생 게임사 샌드폴 인터랙티브의 게임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는 지난달 게임 제작에 AI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기존에 수상한 인디게임어워드(IGA) '올해의 게임상'을 박탈당했습니다. IGA는 후보 등록 단계에서 '제작 과정에 생성형 AI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전 조항을 내세우고 있는데, 해당 게임이 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AI 사용이 순수 창작을 추구하는 인디 게임 업계의 가치관에 어긋난다는 설명입니다.

수상 취소 이후 온라인 커뮤티니에서는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게임 팬들은 '33 원정대'가 독특한 세계관과 감각적 연출, 높은 미적 완성도와 게임성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인 만큼, 제작에 AI를 일부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33 원정대'는 최고 권위의 게임 시상식 '더 게임 어워드(TGA) 2025'에서 최고상을 포함해 9관왕을 석권했습니다. 반면 게임도 제작사의 창작 역량이 총동원된 하나의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AI 사용을 배제한 게임만 평가해 수상하는 IGA를 지지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관련 논란이 커지자, 세계 최대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은 AI 에셋 사용 여부를 엄격히 공시하도록 규정을 강화하기도 했습니다.

AI 창작 논란과는 별개로 게임 업계에서 AI 활용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국내외 게임사들은 개발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AI 도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AI는 단순 반복 작업을 자동화해 개발자의 부담을 덜고, 게임 플레이를 보다 다채롭게 하는 요인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크래프톤 산하 게임 개발 스튜디오 렐루게임즈는 AI를 제작에 적극 도입해 적은 인원으로 완성도 높은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렐루게임즈가 2024년 선보인 '마법소녀 루루핑'은 3명으로 구성된 개발팀이 생성형 AI로 내부 데모 버전을 한 달 만에 제작해 화제가 됐습니다. 일부 특수 효과와 사운드를 제외하고 게임 에셋(구성 요소)의 90%를 AI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캐주얼 모바일 게임도 사람이 직접 개발하려면 최소 2~4개월은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AI를 사용해 제작 기간을 크게 단축한 셈입니다.

최근 누적 판매량 100만장을 돌파한 렐루게임즈의 신작 '미메시스'는 강화 학습과 소형언어모델(SLM) 기술을 적용한 대표 사례입니다. 게임 속에서 AI는 이용자의 행동과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팀원으로 위장한 적군으로 등장해 재미와 긴장감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크래프톤 제공

넥슨 자회사 엠바크 스튜디오가 개발한 흥행작 '아크 레이더스'도 게임 내 NPC(비플레이어 캐릭터)와 게임 내 음성 제작에 AI를 사용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자회사 NC AI가 개발한 거대언어모델(LLM) 바르코를 게임 개발 전반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NC AI의 '바르코 3D'는 기존에 3주 이상 걸리던 3D 게임 에셋 제작을 10분 내외로 줄여주는 기술입니다.

글로벌 게임 산업이 경쟁 심화, 개발비 상승, 숏츠(짧은 동영상) 등 게임을 대체하는 콘텐츠의 부상 등의 삼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AI 적용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특히 대형 게임사가 아닌 예산이 한정된 소형 인디 게임 개발사일수록 AI 기술을 활용해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고, 보다 실험적이고 차별화된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해 구글클라우드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미국,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등 5개국 개발자 615명 중 87%가 AI를 이미 게임 개발 과정에 사용하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게임 통계에서도 드러납니다. 지난해 토털리 휴먼 미디어가 낸 보고서를 보면 스팀 플랫폼 내 약 11만4000개 게임 중 7%(7818개)는 생성형 AI를 활용했고, 신규 출시 게임의 경우 그 비중이 20%로 더 높았습니다. 전년과 비교해 약 700%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정헌 넥슨 일본법인 대표는 지난해 11월 일본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모든 게임사가 유사한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며 "AI를 사용해 어떻게 경쟁력을 높여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최고경영자(CEO)도 "AI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게임을 구분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게임 캐릭터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시나리오 등 핵심 창작 영역을 AI가 대체하는 것에 대해 이용자가 느끼는 거부감은 여전합니다. 일례로 인기 슈팅 게임 '콜 오브 듀티' 신작은 게임에 AI 이미지를 사용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AI 이미지가 게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챗GPT에서 유행한 '지브리풍 이미지'를 포함한 저품질 'AI 슬롭(slop)'이 다수 들어가 "이용자를 기만한다" 비판을 받았습니다.

아크 레이더스에 적용된 음성 AI도 "기계적인 음성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에 개발사는 "반복적 대사 제작에 들이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AI를 사용했고 시각적인 요소에는 AI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업계에서는 AI 기술 고도화로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질이 개선되면서 AI 제작물 특유의 '불쾌한 골짜기' 현상도 조금씩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33억달러(약 4조8000억원) 규모였던 게임 AI 시장은 2033년에 513억달러(약 74조원)로 성장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