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가 '자율주행 레벨3'(L3) 구현을 앞당길 차량용 반도체와 개발 솔루션을 공개했다. 국제자동차기술자협회(SAE) 기준에 따르면 L3는 '조건부 자율주행'에 해당하는 기술 수준으로, 운전자가 특정 상황에만 개입하고 대부분 구간에서 차량이 스스로 주행하는 단계를 말한다.
TI는 6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에서 L3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3가지 제품을 공개한다. ▲TDA5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온칩(SoC) ▲4차원(4D) 이미징 레이더 송수신기(트랜시버·제품명 AWR2188) ▲이더넷 물리 계층(자율주행차 센서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전송하는 내부 통신·제품명 DP83TD555J-Q1 10BASE-T1S)을 통해 고객사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TI는 CES2026 개막 전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중국·대만·필리핀·말레이시아 등 아시아태평양(APEC) 지역 미디어를 대상으로 신제품 발표 사전 간담회를 열고 "전력 효율·안전성을 고려한 프로세싱 기술과 엣지 AI(데이터가 생성되는 기기에서 인공지능 연산을 직접 처리하는 기술)가 접목된 TDA5 제품군과 레이더 송수신기·내부 통신 장치 신제품은 L3 자율주행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마크 응 TI 오토모티브 시스템 총괄 이사는 "자동차 산업은 운전자의 개입이 점차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안전한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TI 반도체 기술을 접목하면 감지·통신·의사결정 등 기술 전반을 혁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 "L3 달성할 수 있는 AI 칩 개발… 업계 최고 전력 효율"
자율주행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TDA5 칩은 TI의 신규 솔루션의 핵심이다. 이 칩을 접목하면 초당 연산 수를 10조(10TOPS·1TOPS는 1초당 1조번 연산)에서 최대 1200조(1200TOPS)까지 확대할 수 있는 '엣지 AI'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차량이 도로에서 다양한 환경을 마주해도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고 대응할 수 있어 L3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전력 효율도 강점이다. 이 칩은 1와트(W)당 24TOPS 연산을 지원한다. 롤랜드 슈펠리히 TI 프로세서 제품 부문 총괄(부사장)은 "전기차는 한 번 충전으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 지표라서 전력을 적게 사용하면서 높은 성능을 내는 칩을 적용해야 한다"며 "TDA5는 업계 최고의 전력 효율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TI는 저전력·고성능 TDA5 칩을 구현하기 위해 자사 신경망처리장치(NPU) 제품 C7를 접목했다. 슈펠리히 부사장은 "전력 소비는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이전 세대 대비 최대 12배 높은 AI 컴퓨팅 성능을 구현했다"며 "안전·보안·컴퓨팅 애플리케이션의 폭넓은 통합을 가능하도록 기능을 꾸렸다"고 말했다.
TI 측은 TDA5가 칩렛(고성능 반도체 기능을 여러 개로 쪼개 제조한 뒤 합치는 기술) 설계를 지원해 고객사 맞춤형 적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이를 위해 TDA5를 UCle(칩렛들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서 서로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통신하기 위한 개방형 표준 인터페이스) 기반으로 제작했다.
TI는 시놉시스와 협업해 고객사의 개발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가상 개발 키트도 제공한다. 디지털트윈(실제 세계를 디지털 공간에 정밀하게 구현해 시뮬레이션 등을 진행하는 개념)이 포함된 개발 도구를 통해 고객사는 차량 없이도 TDA5가 자사 제품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볼 수 있다. 회사 측은 "소프트웨어중심자동차(SDV)의 출시 기간을 최대 12개월까지 단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능"이라고 소개했다.
◇ "악천후에도 문제없는 고화질 레이더… 나노초 동기화 가능한 이더넷"
TI가 TDA5와 함께 출시한 4D 이미징 레이더 트랜시버는 8개 송신기와 8개 수신기(8x8)를 단일 LOP(패키지 직접 연결 방식 안테나 기술)로 제공한다. 별도 장치를 차량에 넣지 않아도 고해상도 레이더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어 차량 설계를 단순화할 수 있다. 키건 가르시아 TI 고성능 레이더 제품 라인 매니저는 "악천후에서도 문제없이 레이더는 다른 감지 시스템과 비교해 자율주행에 유리하다"며 "TI 레이더 솔루션은 350m 거리에서도 객체를 높은 정확도로 인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송수신기를 각각 8개 지원하는 솔루션이라 고객사가 더 많은 채널을 확장하더라도 필요한 장치 수를 줄여줘 장점"이라며 "위성·엣지 아키텍처를 모두 지원해 소형차부터 고급차 시장까지 대응이 가능한 제품"이라고 덧붙였다.
TI는 이번 레이더 트랜시버에 아날로그-디지털 컨버터(물리 신호를 데이터로 바꿔주는 장치)와 레이더 처프 신호 슬로프 엔진(레이더가 보내는 신호의 변화 속도를 계산해 거리를 더 정확히 측정하는 기술)을 적용, 기존 제품 대비 성능을 최대 30% 향상했다.
차량 내부 신호를 전달하는 이더넷 솔루션 역시 진일보했다. 이더넷 직렬 주변 장치 인터페이스(SPI·칩 간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방식)는 미디어 액세스 컨트롤러(MAC·데이터 전송 순서와 충돌을 관리하는 기능)를 내장한다. 이를 통해 나노초 단위(10억 분의 1초)의 동기화를 구현해 차량 안전성을 높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TI는 이번에 공개한 자율주행차 솔루션의 시제품을 이미 일부 완성차 고객에 보내 성능을 평가하고 있다. 이번 CES2026에서는 신규 솔루션이 접목된 차량 환경을 관객이 체험할 수 있도록 부스를 꾸려 운영하고 있다.
마크 응 이사는 "약 20년에 걸친 TI의 자동차 프로세싱 경험을 토대로 나온 신규 솔루션을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대폭 확장했다"며 "자동차 제조사는 물론 부품사를 아울러 첨단 AI 모델을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