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인스타그램 모회사 메타가 한때 '제2의 딥시크'로 불린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마누스(Manus)를 인수했다. AI 시장에서 오픈AI, 구글 등 경쟁사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메타가 AI 에이전트 역량을 강화하고, 유능한 AI 인재를 한 번에 확보하기 위해 중국계 AI 기업을 사들이는 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인수는 중국에 뿌리를 둔 스타트업을 미국 빅테크가 인수한 이례적인 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다. 마누스는 중국에서 설립된 AI 스타트업 중 드물게 탈(脫)중국을 했는데, 본사를 싱가포르로 이전한 덕에 이런 거래가 성사될 수 있었다.
◇ 메타, 마누스 인수로 AI 에이전트 경쟁력 강화
메타는 29일(현지시각)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AI 에이전트 스타트업 마누스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양사는 구체적인 거래 금액을 밝히지 않았으나, 마누스의 기업가치가 올해 4월 기준 5억달러(약 7000억원)로 평가받은 점을 감안하면 인수 금액은 이보다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인수는 AI 에이전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결정으로 분석된다. 메타는 이날 "마누스는 시장 조사, 코딩, 데이터 분석과 같은 복잡한 작업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선도적인 자율형 범용 에이전트를 구축했다"라며 "마누스 서비스의 운영과 판매를 지속하고 메타의 제품에 이를 통합할 예정"이라고 했다.
알렉산더 왕 메타 최고AI책임자(CAIO)는 이날 엑스(X)에 "마누스는 AI 모델들이 지닌 잠재 역량(capability overhang)을 탐구해 강력한 에이전트를 구축하는 데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추고 있다"라며 "메타와 함께 뛰어난 AI 제품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했다.
2022년 중국에서 설립된 마누스는 올해 3월에 '세계 최초의 완전 자율 AI 에이전트'를 선보이면서 주목을 받았다. AI가 인간의 지시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생각해 다양한 작업을 처리하는 서비스가 미국 AI 기업을 위협할 정도로 혁신적이라는 평이 잇따르면서 업계와 주요 외신도 '제2의 딥시크'라고 칭했다.
중국 내에서도 딥시크와 더불어 떠오르는 AI 스타트업으로 각광받던 마누스는 올해 7월 돌연 중국 사업을 접고 싱가포르로 이전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 개발 인력 40명을 제외한 직원 80여명을 모두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중앙통신을 비롯한 현지 매체는 마누스가 미국의 대중 규제를 피하기 위해 본사를 이전했다고 전했다. 첨단 AI 모델에 투자하려면 자본을 유치해야 하는데, 미·중 AI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투자자를 찾기가 어려웠고 반도체 수출 통제로 컴퓨팅 파워마저 부족해지자 본사 이전을 단행한 것이다.
실제 마누스는 지난 5월 미국 투자사 벤치마크의 주도로 7500만달러(약 1076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 유치를 계획했지만, 미국의 '해외 투자 안보 프로그램' 규제에 막혀 여름까지 미국 재무부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 뒤 해당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이어 미국 빅테크에 인수되는 이례적인 사례의 주인공이 됐다.
마누스는 메타에 인수된 이후에도 샤오 홍 마누스 최고경영자(CEO) 체제로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계속 운영할 전망이다. 홍 CEO는 "이번 메타 합류로 마누스는 운영 방식이나 의사 결정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더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기반 위에서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AI 뒤처진 메타의 승부수…M&A 속도
이번 인수는 오픈AI와 구글을 따라잡기 위한 메타의 AI 전략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타는 올해 들어 유망 AI 스타트업을 통째로 인수해 첨단 기술과 인재를 흡수하는 광폭 M&A 행보를 이어왔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올해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초지능' 달성을 목표로 '메타 초지능 연구소'를 설립했고, 경쟁사에서 핵심 인재를 빼오는 등 고급 AI 인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앞서 6월에는 AI 모델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이미지·텍스트 등을 가공하고 정리하는 '데이터 라벨링' 기술을 보유한 스케일AI 지분 49%를 143억달러(약 19조6000억원)에 사들였고, 알렉산더 왕 스케일AI 창업자를 초지능 연구소를 이끌 수장으로 임명했다. 이어 음성 AI 스타트업 플레이AI와 웨이브폼스, AI 기기 스타트업 리미트리스도 인수했다.
메타 관계자는 "마누스의 뛰어난 인재들은 메타에 합류해 메타 AI를 포함한 소비자와 비즈니스 제품 전반에 걸쳐 범용 에이전트를 제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간 AI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자금 조달 등에 한계를 느끼는 중국 기업들이 마누스처럼 본사를 타국으로 옮기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싱크탱크 하이툰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유능한 중국 기업과 인재들이 미국에 팔리고 있다"며 "중국이 인재와 기업가를 중시하지 않고 자본의 기본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미·중 경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