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미국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가 인텔 보통주 약 4%를 약 50억달러(약 7조 원)에 매입하며 주요 주주에 올랐다. 이번 거래는 지난 9월 양사가 발표한 전략적 협력을 구체화한 것으로 향후 두 회사의 파트너십이 돈독해질 것이라는 신호다.

이번 '빅딜'을 통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급망에서 인텔의 입지가 강해질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30일 주요 외신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번 거래를 미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정책과 인텔의 제조 역량 회복, 그리고 엔비디아의 공급망 안정화 전략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결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를 비롯해 퀄컴, 애플, AMD 등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은 대부분 첨단 칩 생산을 대만 TSMC나 삼성전자에 의존하고 있다. 인텔은 지난 수년간 첨단 파운드리 시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자체 물량 이외에 외부 대형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비롯해 최첨단 공정에 필요한 설비 투자를 단행한 인텔은 지속적인 실적 부진으로 비용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엔비디아가 인텔 지분 매입을 결정하면서 인텔의 설비투자 비용 부담을 일부 줄여줄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월스트리트 전문가들도 이번 지분 매입이 인텔의 중요한 자금줄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월가 전문가를 인용해 "엔비디아의 지분 확보는 인텔에 단순한 자금 지원 그 이상이며 기술 협력 신뢰의 표시"라고 전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역시 이번 협업을 '역사적인 거래'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와 반도체 산업 부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 파운드리 생태계의 가장 큰 문제는 최첨단 반도체 공정 분야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인텔을 비롯한 미국 제조 기업에 지속적으로 물량을 맡겨줄 확실한 대형 고객, 이른바 앵커 고객이 필요한 셈이다. 로이터는 "엔비디아가 인텔의 주요 주주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 정부가 인텔 파운드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 파운드리 업계 관계자는 "당장 엔비디아가 최첨단 칩 생산을 인텔로 옮긴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미국 내에서 설계와 제조의 연결 고리가 굵어지는 것은 분명하다"며 "엔비디아가 사실상 단일 국가에 과도하게 집중된 첨단 제조 공급망을 분산하려는 동기를 갖고 있고, 미국 정책 당국은 첨단 제조를 국내에 붙들어두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신중론도 있다. 당장 인텔이 엔비디아의 칩을 위탁 생산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미 투자은행 번스타인은 "인텔이 엔비디아에 맞춤형으로 설계된 x86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들더라도 인텔 파운드리를 엔비디아가 직접 쓰는 구조가 아니라면 50억달러는 사실상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단순 투자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다수의 애널리스트들은 엔비디아가 인텔 파운드리에 실제로 물량을 맡기겠다는 계약이나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이번 투자는 인텔에게는 상징적 의미가 있지만, 글로벌 파운드리 경쟁 구도에서 실질적 변곡점으로 보기엔 아직 부족하다"며 TSMC 중심 구조가 단기간에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