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의 한 KT 대리점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뉴스1

정부가 지난 29일 KT 해킹 침해사고에 대한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KT가 가입자 전체에 대해 위약금 면제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신업계는 약정 기간이 남아 있어도 위약금 없이 다른 이동통신사로 번호이동이 가능해짐에 따라 KT 가입자들의 이탈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김영섭 KT 사장의 연임 포기로, 현재 해킹 사태 수습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새 대표이사(CEO)의 조기등판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 위약금 면제로 가입자 줄이탈 우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9일 KT가 전체 가입자에 대해 이용약관상 위약금 면제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해킹 침해사고에서 KT 과실 여부와 전체 이용자에게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있어 주된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의 위약금 면제 판단은 나왔지만 구체적인 위약금 면제 기간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KT가 위약금 면제 기간을 어떻게 할 건지 여부는 SK텔레콤 사례처럼 국민 눈높이에 맞춰 적절한 판단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SK텔레콤은 최종 해킹 침해조사 결과 발표 다음 날인 올해 7월 5일부터 14일까지 열흘간 위약금을 면제했다. 해킹 사태가 알려진 올해 4월 22일까지 기간을 소급 적용했기 때문 총 85일간 위약금을 면제해준 셈이다. 통신업계와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위약금 면제 기간(4월 22일부터 7월 14일까지) SK텔레콤 가입자의 순감 규모(알뜰폰 제외)는 60만1376명에 달했다.

문제는 가입자들로부터 신뢰가 곤두박질쳤다는 점이다. 과기정통부가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펨토셀(소형 기지국) 해킹을 통해 무단 소액결제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 탈취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가입자들의 불안감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KT의 펨토셀 관리 부실로 인한 신뢰도 하락과 미수거 펨토셀 문제도 가입자 이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해킹 규모 측면에서도 SK텔레콤을 능가한다. SK텔레콤은 발견된 악성코드가 33종, 감염된 서버가 28대였지만 KT는 103종의 악성코드에 노출됐고, 94대의 서버가 감염된 것으로 조사됐다.

◇ 위약금 면제 고객 노린 통신 보조금 전쟁 예고

여기에 KT 위약금 면제 고객들을 노린 통신사간 보조금 전쟁이 격화되면 KT 가입자의 이탈이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지난 7월 SK텔레콤이 위약금을 면제한 때와는 상황이 다르게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통신업계와 KTOA에 따르면 SK텔레콤이 해지 위약금 면제에 들어간 올해 7월 5일부터 14일까지 집계된 가입자 순감 규모는 7만9171명으로, 하루 평균 7917명씩 가입자가 감소하는 것에 그쳤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 해킹 사고 직후인 4월 말부터 6월까지 SK텔레콤 가입자의 이탈을 유도하기 위한 경쟁사(KT, LG유플러스)의 보조금 투입이 컸다"면서 "7월에 위약금이 면제됐을 때 기대 이상의 보조금 투입이 없었던 건 통신사들의 마케팅비 여력이 많이 소진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KT 해킹 사고가 불거진 9월 이후 통신사간 보조금 경쟁도 없었고, 내년 1월이 되면 통신사의 마케팅비 여력이 올라가기 때문에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KT 해지 가입자를 겨냥해 보조금을 대폭 높이면 가입자 이탈이 심화될 수 있다"라고 했다.

◇ "더 큰 문제는 컨트롤타워의 부재"

SK텔레콤이 지난 7월 위약금 면제를 발표했지만 가입자 이탈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또다른 이유로는 신속한 대응이 꼽힌다. 당시 SK텔레콤은 1조원 규모의 고객 보상안을 내놓으면서 기존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혜택 확대에 집중했다. 8월 통신요금 50% 할인, 올해 12월까지 매달 데이터 50기가바이트(GB) 추가 제공, 주요 멤버십 브랜드 50% 할인 등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위약금 면제 적용 기간에 대한 결정만 비교해도 KT는 SK텔레콤보다 느린 편이다. SK텔레콤은 과기정통부가 해킹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한 당일 위약금 면제 기간을 발표했다. 하지만 KT는 해당 안건에 대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KT가 봉착한 더 큰 문제는 새로운 대표이사(CEO)를 선임할 내년 3월까지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라면서 "기존 가입자들의 이탈을 막을 보상안을 신속히 내놓지 못한다면 가입자 줄이탈을 막을 길이 없다"라고 했다.

업계 일각에선 KT 차기 CEO 최종 후보로 선출된 박윤영 전 KT 사장의 조기 등판 필요성이 커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경원 세종대 경영학과 석좌교수는 "통신사의 경우 사업 특성상 가입자 이탈은 큰 손해를 야기하고 이를 방치하면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게 된다"면서 "주주 가치 보호를 위해서라도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 임시주총을 열고 신임 CEO 선임 안건을 논의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