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ZF 프리드리히스하펜 사업장./ZF 홈페이지

삼성전자가 지난 23일 자회사 하만을 통해 독일 'ZF 프리드리히스하펜(ZF)'의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사업을 15억유로(한화 2조6000억원)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독일 현지에서는 자동차용 전장 부품 시장에서 유럽 터줏대감들이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번 인수는 자동차 전장 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IT 기업들의 시장 주도권이 더 굳건해진 사례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 자동차용 전장 사업이 인포테인먼트와 ADAS를 포괄하는 통합형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는 전자·IT 기업들이 유럽의 전통적인 자동차 공급망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

24일 독일 유력 일간지 디 벨트(Die Welt)를 비롯한 주요 매체들은 이번 삼성전자의 ZF 인수에 대해 '재무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미래 먹거리를 매각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디 벨트를 비롯한 다른 독일 매체들도 현지 전문가를 인용해 "유럽이 규제와 분열 속에서 속도를 잃어버린 사이 아시아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미래 기술을 사들여왔다"고 전했다.

ADAS는 카메라, 레이더 등 센서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위험을 감지해 운전자가 차량을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을 뜻한다. ZF는 25년 이상의 업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ADAS 스마트 카메라 분야에서 업계 1위 입지를 확보해 왔다.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ADAS를 육성해온 독일 현지에선 자국의 첨단 제조업 기반 중 하나가 삼성전자의 차세대 사업 포트폴리오 안에 편입됐다는 위기의식도 나온다. 또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 모델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전장 부품 공급망에서 소외되기 시작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도 삼성전자의 ZF ADAS 사업 인수가 자동차 전장 부품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나타내는 단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기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장의 강자인 하만이 ADAS를 포괄하는 ZF까지 품은 것은 시장 자체가 '중앙집중형' 아키텍처로 재편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을 비롯한 전자·IT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 투자와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는 연구개발(R&D) 능력을 강점으로 시장 헤게모니를 가져가고 있다.

ZF를 비롯해 유럽의 전통적인 자동차용 전장 부품 강자인 보쉬, 콘티넨탈, 발레오 등은 하드웨어 단품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해왔다. 센서, 파워트레인, 제동 등 자동차 업체의 수요에 맞춰 안정적으로 단품을 공급해온 것이다. 자동차 시장의 특수성에 초점을 맞춰온 사업 구조는 대체로 완성차 업체 맞춤형으로 진행돼 왔고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시장 흐름은 자동차를 하나의 거대한 전자 기기로 여기는 중앙 집중형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다. 자동차에 소프트웨어정의 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되면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의 연결성이 중요해졌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퀄컴, LG전자 등이 자동차용 전장 부품 시장에 빠르게 침투한 것도 이 같은 자동차 부품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가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삼성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하만의 ZF ADAS 사업 인수는 자동차 산업이 SDV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는 방증 중 하나"라며 "유럽 현지 자동차 기업들도 전통적인 공급망으로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와 ADAS 시장에 민첩하게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지 오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