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3E'가 탑재되는 인공지능(AI) 칩 H200의 중국 수출을 본격화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내년도 HBM3E 공급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엔비디아뿐만 아니라 구글과 아마존 등 자체 AI 가속기를 설계한 기업의 주문량이 대폭 증가하면서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내년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6세대 HBM(HBM4) 생산 능력을 확대하는데 힘을 쏟으면서, HBM3E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것도 가격 인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HBM3E 공급 가격을 20% 가까이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차세대 HBM 출시를 앞두고 가격이 인하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HBM3E 최대 고객사였던 엔비디아를 포함해 자체 AI 가속기를 설계하는 구글과 아마존 등이 내년 HBM3E 주문량을 상향 조정한 영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올해 HBM3E가 HBM 시장의 주력 제품으로 자리매김했지만 HBM4 시장이 개화하는 내년에는 가격이 다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면서도 "하지만 엔비디아를 제외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HBM3E를 탑재한 AI 가속기를 내년에 내놓으면서 (HBM3E에 대한) 수요도 지속 성장하는 추세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HBM4 생산 능력 확대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면서 20% 수준의 가격 프리미엄이 붙은 상황"이라고 했다.
엔비디아의 AI 칩 H200의 중국 수출이 허용되면서 HBM3E 수요가 예상보다 확대된 것으로 파악된다. 엔비디아의 H200에는 HBM3E 제품이 대당 6개씩 탑재된다. 22일(현지시각) 로이터는 "엔비디아는 기존 재고로 초기 주문을 처리할 계획이며, 출하량은 총 5000∼1만개의 칩 모듈(H200 약 4만∼8만개)로 예상된다"며 "엔비디아는 중국 고객사들에 해당 칩의 신규 생산 능력 확충 계획을 알렸으며, 관련 신규 주문을 내년 2분기부터 받기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구글과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HBM3E가 필요한 상황이다. HBM3E를 탑재한 구글의 TPU(텐서처리장치)와 아마존의 트레이니움이 내년에 출하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두 제품 모두 HBM 탑재량이 전 세대 제품 대비 20~30% 가까이 늘어난다. 구글의 7세대 TPU에는 대당 HBM3E 8개가, 아마존의 트레이니움3에는 HBM3E 4개가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차세대 제품인 HBM4 생산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HBM3E 수요가 공급을 웃돌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내년 HBM 시장의 매출 비율은 HBM4 55%, HBM3E 45%로 전망되며 내년 3분기부터 HBM4가 HBM3E 수요를 빠르게 흡수해 나갈 전망"이라고 했다.
HBM 수요 급증세와 맞물려 D램 등 주력 제품의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실적에 대한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내년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한달 전 76조6544억원에서 85조4387억원으로,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71조4037억원에서 76조1434억원으로 상향 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