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테크 업계가 'AI(인공지능)발 해고 공포'에 떨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미국을 중심으로 12만명이 넘는 IT 인력이 일자리를 잃었다. 과거의 해고가 경기 침체에 따른 비용 절감이었다면, 이번 칼바람은 AI 도입을 통한 '인력 대체'와 '체질 개선'이 원인이라는 점에서 업계 종사자의 공포감이 남다르다.
23일 글로벌 해고 트래킹 사이트 레이오프(Layoffs.fyi)와 외신 분석을 종합하면, 올 한 해 동안 전 세계 주요 테크 기업에서 발생한 해고 인원은 12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역대 최악이었던 2023년보다는 적은 수치지만, 2019년 이전 호황기와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아마존,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기업들이 줄줄이 수천명 단위의 감원을 단행하며 고강도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이러한 칼바람은 국경도 없다. 스웨덴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가 직원 60%를 내보내고, 틱톡도 아일랜드 지사 인력을 감축하는 등 유럽과 아시아 기술 허브까지 해고 한파가 번지고 있다.
이번 해고 사태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들이 사람을 내보낸 돈으로 AI를 사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은 올해 AI 인프라 구축에만 약 3750억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반면 효용성이 떨어진 부서나 AI로 자동화가 가능한 직무는 가차 없이 정리하고 있다. 마크 잔디 무디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덤프트럭에 치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기업들은 코딩, 번역, 고객 상담 등 AI가 대체하기 쉬운 직군부터 인력을 줄여나가고 있다.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이 대량 감원으로 AI 시대에 대응하고 있다면, 노동 유연성이 낮은 국내 IT 업계는 채용 동결이라는 방식으로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해고가 법적으로 까다로운 한국적 특성상, 기존 인력을 내보내는 대신 신규 채용 문을 아예 닫아버리는 고사 작전을 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에서는 신입사원을 찾아보기 힘든 기형적인 구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주요 IT 기업의 고령화는 수치로 증명된다. 네이버의 20대 직원 비중은 2021년 28%에서 최근 18%대까지 급락했고, 카카오 역시 같은 기간 28%에서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40~50대 직원 비중은 빠르게 늘고 있다. AI가 초급 개발자의 업무인 코딩 테스트나 단순 디버깅을 수행하게 되면서, 기업들이 교육 비용이 드는 신입 대신 즉시 전력감인 경력직 소수만 선호하기 때문이다.
IT업계 관계자는 "미국처럼 해고가 쉽지 않은 국내 기업들은 자연 감소분이 생겨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력을 줄이고 있다"며 "AI 기술 격차가 벌어질수록 노동 시장 양극화와 고용 한파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