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3사 중 유일하게 해킹 피해를 자진 신고했던 SK텔레콤이 최근 한국소비자원 조정 결정으로 대규모 보상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유심 교체와 요금 할인 등으로 1조원이 넘는 고객 보상을 진행한 데다, 해지 위약금을 면제하고 1000억원대 과징금까지 부과받은 상황에서 이번 소비자 분쟁조정 결정이 추가 부담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를 두고 향후 해킹 피해를 자발적으로 알리는 쪽이 손해라고 받아들이는 신호가 업계에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 보상금 전면 수락하면 2조3000억원 추산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21일 SK텔레콤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신청자 1인당 10만원 상당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분쟁 조정 신청자에게 5만원 통신요금 할인과 제휴 업체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티플러스포인트 5만 포인트를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이번 조정 결정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향후 민사소송에서 소비자 측에 유리한 참고 사정으로 반영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SK텔레콤은 "조정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신중히 결정할 것"이라고 입장을 냈습니다. SK텔레콤이 조정안을 전격 수락하는 경우를 가정하면, 전체 가입자 수가 약 2300만명인 만큼 보상 규모가 최대 약 2조3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옵니다. 단일 사건 기준으로도 국내에서 보기 드문 수준의 보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최근 쿠팡 관련 해킹 사고를 계기로 정부와 국회가 해킹 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포함한 법 개정을 추진하는 점도 SK텔레콤의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거론됩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소급 적용은 불가능하지만, 소비자분쟁 조정을 통해 사실상 징벌적 배상에 준하는 효과가 우회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 시장에서 제기됩니다. 이 때문에 SK텔레콤이 조정안을 전면 거절하기보다는 일부 수용하는 절충 가능성도 함께 거론됩니다.
◇ '자진 신고' 하면 불이익… 업계 "은폐 유인 커진다" 우려
통신업계는 이번 사안이 "자진 신고가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인식을 굳힐 경우, 향후 기업들의 신고 행태를 왜곡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은 이미 유심 교체 비용으로 2000억∼3000억원을 썼고, 개인정보위로부터 134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습니다. 여기에 요금 할인과 멤버십 제휴 50% 할인 등으로 1조원대 고객 보상도 실시했고, 위약금 면제도 받아들였습니다. 50여일간 신규 가입 영업 중단이라는 제재도 받았습니다.
이 여파로 SK텔레콤은 올 3분기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분기 영업손실(522억원 적자)을 기록했고, 배당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통신 3사 중 유일하게 해킹 피해를 자진 신고한 SK텔레콤에 비용 부담과 제재가 집중되는 구도가 굳어지면, 앞으로는 기업들이 피해를 최대한 숨기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반면 KT와 LG유플러스는 자진 신고 없이 해킹 상황이 외부로 드러난 뒤 늑장 대응했다는 시각이 업계에 퍼져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서버 폐기 의혹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KT는 구체적인 해킹 피해 정황이 알려진 뒤에도 SK텔레콤과 같은 신규가입 영업정지 제재 없이 정상 영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통신 3사가 모두 해킹 피해를 겪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SK텔레콤 사태 때처럼 KT나 LG유플러스의 영업 실적이 급락하는 양상이 재현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업계에서는 "자진 신고하지 않고 버티는 쪽이 오히려 현명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는 말도 들립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 3사 모두 해킹을 당했는데 가장 먼저 자진 신고한 SK텔레콤만 1조원이 넘는 비용 지출을 했고, 자진 신고가 없었던 다른 통신사들은 큰 비용 지출 없이 정상 영업을 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통신 3사의 주가 흐름도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킹 피해를 자진 신고한 SK텔레콤의 이달 22일 주가는 연초(1월 2일) 대비 5.17% 감소한 반면, 선제적으로 자진 신고를 하지 않은 KT와 LG유플러스의 경우 주가가 크게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KT 주가는 20.82%, LG유플러스 주가는 47.3% 올랐습니다.
관건은 SK텔레콤이 조정안을 수용해 분쟁 확산을 차단할지, 거부하고 법적 다툼으로 넘어갈지입니다. 지난 8월 개인정보 분쟁조정위원회가 1인당 30만원 지급을 권고했지만 SK텔레콤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던 전례가 있습니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해킹을 당한 통신사 중 SK텔레콤만 선제적으로 자진 신고를 했는데 강도 높은 제재를 받은 것 같다"면서 "자진 신고를 한 기업에 이점을 주도록 제도를 설계하지 않으면 사고 은폐 유인이 커질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