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 필요한 인공지능(AI), 이른바 '피지컬 AI'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카본식스가 19일 제조 현장을 겨냥한 로봇 지능 전략을 공개했다. 카본식스는 범용 휴머노이드 중심의 접근과 거리를 두고, 제조 공정에 즉시 투입 가능한 로봇용 AI와 하드웨어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카본식스의 시그나이트 시연./최효정 기자

카본식스는 2019년 비전 AI 스타트업 수아랩을 창업해 미국 코그넥스에 매각했던 문태연 대표가 지난해 7월 설립한 기업이다. 문 대표는 제조업 현장에 AI를 적용해온 지난 10년의 경험을 토대로, 로봇 AI의 출발점으로 '제조 현장'을 선택했다. 그는 "제조 공정에서 생성되는 이미지와 작업 데이터는 인터넷에 존재하지 않고 현장에 묻혀 있다"며 "사람이 한 번 작업하면 사라지는 휘발성 정보라는 점에서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거대언어모델(LLM)과 로봇 AI의 근본적인 차이도 짚었다. 그는 "GPT와 같은 언어 모델은 인터넷이라는 방대한 데이터 기반 위에서 성장했지만,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에 필요한 데이터는 인터넷에 없고 사람의 동작과 현장 작업 속에 숨어 있다"며 "로봇 영역에서 LLM과 같은 '제너럴 플레이'를 그대로 가져오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휴머노이드 만능론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서형주 카본식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휴머노이드 하나로 모든 제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접근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며 "제조 현장은 공정마다 환경·도구·정밀도·속도 요구가 모두 달라 단일 플랫폼으로 범용성과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 CTO는 특히 투자 대비 효용 측면에서 휴머노이드 중심 전략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제조업에서는 사이클 타임, 비용, 신뢰성이 동시에 맞아야 기술이 채택된다"며 "범용 휴머노이드는 현장의 요구를 충족시키기보다 비용과 복잡도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카본식스가 내세우는 피지컬 AI 전략의 핵심은 데이터 수집 방식이다. 문 대표는 제조 현장에 축적돼 있으나 활용되지 못한 데이터를 '디지털 히스토리'로 규정하며 "사람의 모션과 작업 과정에 묻혀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하고, 그 대가로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가 사업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는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제조업 클러스터가 밀집한 한국이 피지컬 AI 사업화에 유리한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전략의 결과물로 카본식스는 최근 AI 모방학습 기반 제조 로봇 표준품 '시그마키트(SigmaKit)'를 출시했다. 시그마키트는 AI 전문 지식이나 복잡한 시스템 설정 없이도 제조 공정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툴킷 형태의 솔루션으로, 사람이 작업을 보여주면 로봇이 이를 학습하는 구조를 구현했다.

시그마키트는 ▲제조업 특화 인공지능 ▲섬세한 작업에 특화된 로봇 그리퍼 ▲직관적으로 조작 가능한 티칭 툴 ▲센서 모듈 등으로 구성됐다. 생산 모델 변경이 잦고 비정형성이 높은 제조 환경에서도 로봇이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설계돼, 기존 자동화로는 적용이 어려웠던 공정까지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카본식스는 시그마키트를 시작으로 자동화가 어려웠던 제조 공정을 중심으로 피지컬 AI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문 대표는 "출시 직후부터 판매 문의와 사전 예약이 있었고, 현재 국내 제조 대기업들과 기술검증(PoC)을 진행 중"이라며 "설거지나 가사 로봇이 아니라, 실제 제조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상용화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해 제조업 안에서 가장 고도화된 로봇 AI 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