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거품론' 우려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실적 전망치가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되고 있다. 기존에는 삼성전자 83조원, SK하이닉스 75조원 수준으로 두 회사의 합산 연간 영업이익이 15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게 암묵적인 컨센서스였다. 하지만 해외 시장조사업체들이 내년도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더 도드라질 것이라고 전망하자 두 회사가 각각 100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이라고 눈높이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17일 주요 시장조사업체들의 내년 D램, 낸드플래시 가격 전망치를 종합하면 D램과 낸드가 15~20% 상승세를 지속할 것으로 관측된다. 트렌드포스는 D램 평균거래가격(ASP) 8~15% 상승을 기본 시나리오로 제시하며 수급 상황에 따라 공급부족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경우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메모리 공급 정상화 지연을 근거로, 내년 D램 가격이 연간 기준 최대 20% 수준까지 상승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D램뿐만 아니라 낸드플래시 공급 부족도 심각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년간 이어진 낸드 수익성 악화에 생산라인 감축을 진행해왔고, 설비투자 역시 수익성이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재편해왔기 때문에 낸드 공급 증가율이 제한됐다. 이 가운데 AI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인 고성능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수급 불일치가 점점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렌드포스는 2026년 낸드 수급에 대해 연간 수요 증가율은 약 20~22%, 연간 공급 증가율 약 15~17%로 관측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낸드 평균 가격은 전년 대비 한 자릿수 후반~두 자릿수(+8~15%) 상승을 예상했으며, 기업용 낸드의 경우 25% 이상 오를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내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치를 다시 올려잡는 분위기다. 키움증권은 삼성전자의 내년 연간 영업이익을 107조6120억원으로 예상했다. iM증권은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93조8430억원으로 제시했다. 삼성전자의 역대 최대 연간 영업이익 기록은 2018년에 세웠던 58조8900억원, SK하이닉스는 작년 23조4673억원이다.
관건은 내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범용 D램, 낸드 등 품목별로 가격 상승폭이 상이할 것이라는 점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3강 입장에서는 이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이 파느냐'보다 '무엇을 파느냐'가 실적을 좌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줄곧 HBM 시장 1위를 지켜왔던 SK하이닉스는 5세대 HBM(HBM3E) 중심의 출하량 확대와 AI 서버 수요 강세가 이어질 경우 평균판매가격(ASP) 상승 효과가 가장 크게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는 2026년에도 서버·HBM 중심의 수익성 우위가 유지될 것으로 본다. 다만 6세대 HBM(HBM4) 제품의 경우 기술 수준이 삼성전자와 사실상 동일선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변수가 남아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출하량 기준 압도적 1위 지위를 유지하지만, HBM 점유율 회복 속도가 관건이다. 최근 삼성전자의 HBM3E 출하량이 늘고 있는 가운데 범용 D램과 낸드 가격이 동반 상승할 경우, 물량 효과에 가격 효과가 동시 작용해 메모리 사업부 실적은 대폭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