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LX세미콘이 애플 공급망에 침투한 대만 노바텍의 점유율 확대와 TV 시장의 수요 부진으로 이중고를 앓고 있다. 여기에 모바일용 디스플레이 구동칩(DDI)마저 중국 고객사에 납품이 줄면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특히 노바텍은 최근 집중적인 투자로 DDI 칩뿐만 아니라 주문형 반도체(ASIC)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팹리스 강자로의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LX세미콘의 대전캠퍼스 사옥 전경. /LX세미콘 제공

16일 증권가에 따르면 LX세미콘은 우호적인 환율과 계절적 성수기에도 불구하고 올해 3분기에 전년보다 영업이익이 약 60% 감소한 14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파이를 키우기 시작한 대만 노바텍이 최대 고객사 중 하나인 중국 BOE 공급망에 진입한 데 이어 점점 물량이 커지고 있다. 가격 경쟁이 심화하면서 모바일용 DDI 출하량이 늘었음에도 수익성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DDI는 스마트폰과 TV, 태블릿 등에 탑재되는 디스플레이에서 화면의 픽셀 하나하나를 제어해 선명하고, 생생한 영상을 구현하도록 돕는 반도체를 말한다. DDI 시장 1위는 삼성전자로 세계 시장에서 약 3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 뒤를 노바텍과 LX세미콘이 잇고 있다. 이 가운데, 노바텍이 LX세미콘의 점유율을 빼앗기 위해 부품가를 인하하는 등의 전략으로 LG디스플레이, BOE 등에 납품 물량을 늘리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들어 LX세미콘은 과거 한식구였던 LG디스플레이의 DDI 공급망에서도 애플 아이폰 시리즈용 DDI 물량의 절반 이상을 노바텍에 내준 것으로 파악된다. 한때 LG디스플레이는 LX세미콘로부터 DDI를 독점 공급 받았지만, 지난해부터 원가절감을 위해 공급망을 이원화했다. 이에 LX세미콘은 지난해 BOE 납품 물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만회했으나, 올해부터는 BOE의 공급망 다변화로 이마저도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증권은 올해 4분기에도 LX세미콘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했다. 매출은 전년보다 18.2% 줄어든 4110억원,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42.3% 감소한 170억원으로 예상했다. 연말 할인 시즌에도 불구하고 TV용 대형 DDI 수요 부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메모리 대란으로 IT 제품 공급망도 불안정해지면서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김종배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스마트폰용 DDI 칩 분야에서 경쟁사(노바텍)의 점유율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쟁사가 주요 고객사 공급망에 들어오면서 P-OLED용 칩 출하량 확대에도 실적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고객사들도 DDI 공급망을 다원화하거나 내재화하는 추세다. LG디스플레이로부터 광저우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을 매입한 차이나스타(CSOT)도 계약된 물량까지는 기존 부품 공급망을 유지하되 이후 물량부터는 DDI를 포함한 부품을 중국 업체로부터 공급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내년에도 이렇다 할 반등 포인트가 없다는 것이다. TV, IT, 모바일용 등 주력 매출처가 모두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으며 수요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이는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OLED 패널 출하량 확대로 일부 품목에서는 평균판매단가(ASP)가 소폭 상승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악재가 너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