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수요 확대로 메모리 반도체 제품들의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AI 서버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올해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면, 내년에는 DDR5·LPDDR·GDDR 등 범용 D램의 수익성이 부각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메모리 호황 국면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전략이 엇갈리면서, SK하이닉스의 HBM 중심 전략이 중장기 수익성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인지 시험대에 올랐다.

16일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DRAMeXchange)에 따르면 DDR5 16Gb 가격은 최근 10달러대 중반까지 올랐고, 서버용 DDR5 모듈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범용 D램의 기가바이트(GB)당 가격이 12~13달러 수준까지 올라 HBM4 추정 단가(GB당 15달러 안팎)와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7회 반도체 대전(SEDEX 2025)에서 SK하이닉스의 HBM4 실물이 공개되고 있다./뉴스1

수익성 측면에서도 범용 D램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최근 보고서에서 HBM의 높은 제조 원가를 감안할 때 2025~2026년에는 범용 D램의 매출총이익률이 HBM을 일시적으로 상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HBM 증설에 생산능력이 집중되면서 전통 D램 공급이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DDR 계열의 가격 협상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증권가도 비슷한 시각을 내놓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범용 D램 가격 상승으로 내년 DDR5 마진이 HBM3E(5세대 HBM)를 추월하며 수익성이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며 "서버 수요가 견조한 가운데 스마트폰, 노트북,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범용 메모리 품귀 현상이 심화되면서 내년 반도체 기업 실적은 범용 D램이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범용 D램 제품의 영업이익률이 70% 안팎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이 같은 수익성 구조 변화는 실적 예측에도 반영되고 있다. KB증권은 2026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약 82조원, SK하이닉스는 74조원 수준으로 제시했다. 키움증권 등 일부 증권사는 상단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100조원 안팎, SK하이닉스를 90조원 수준까지 거론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범용 D램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삼성전자가 가격 상승 국면에서 실적 레버리지 효과를 더 크게 누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사의 전략 차이는 뚜렷하다. SK하이닉스는 신규 생산능력 투자의 중심을 HBM에 두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외신과 업계 자료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내부에서는 범용 D램 공급 부족 국면이 2028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회사는 향후 도입하는 Low-NA EUV(극자외선) 장비를 HBM 및 고급 패키징 공정에 우선 배정하는 기조를 굳혔다. AI 메모리 분야에서의 기술 리더십과 전략 고객 락인(가두기) 효과를 중시한 선택이라는 평가다.

다만 HBM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수익성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베이스 다이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이 적용되고 고난도 적층·패키징을 거치면서 원가 부담과 수율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반면 범용 D램은 공정 안정성이 높아 가격 상승분이 직접적으로 이익에 반영되는 구조라는 것이 증권가의 공통된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HBM4(6세대 HBM) 투자와 함께 GDDR7·LPDDR5X 등 범용·모바일 D램으로 생산능력을 유연하게 배분하는 '믹스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HBM은 전략적 의미가 큰 제품이지만, 메모리 기업의 중단기 실적은 결국 범용 D램과 HBM 간 제품 믹스에 의해 결정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은 AI 시대에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제품이지만, 단기·중기 실적은 여전히 범용 D램 및 낸드 가격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SK하이닉스의 HBM 중심 전략 역시 실제 수익으로 얼마나 이어지는지가 향후 평가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