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르 빈 이스라엘 혁신청(IIA) 최고경영자(CEO)가 10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에서 열린 'AI 위크 2025'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최지희 기자

이스라엘이 안보 비용 증가가 경제 둔화로 이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AI) 육성을 국가 생존 전략으로 내세웠다. 잦은 전쟁으로 국방비 지출이 급증해 경제 성장이 저하되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신성장 산업으로 꼽히는 AI 분야에서 앞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10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열린 'AI 위크 2025'에서 이스라엘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국가 안보와 경제의 딜레마를 해결할 열쇠로 AI를 꼽았다. AI 위크는 매년 전 세계 AI 전문가와 정·재계 인사들이 텔아비브에 모여 최신 기술 트렌드와 국가 전략을 공유하는 이스라엘 최대 규모의 기술 콘퍼런스다.

◇ "안보 비용으로 경제 위기 이어지는 고리 끊으려면 AI가 유일한 해법"

이날 기조연설에 나선 이스라엘 국가디지털청(INDA)의 니르 야노브스키 다간 데이터·AI 혁신부 총괄은 안보 비용 급증이 경제 위기로 직결되는 이스라엘의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AI 혁명에 어떻게 대응하는 지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위기는 전쟁이 터질 때마다 안보 비용 부담으로 경제가 흔들리는 구조가 지금껏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국방비를 흡수하고도 남을 만큼 경제 규모를 키우려면 AI와 같은 강력한 성장 엔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 자문 기구인 '나겔 위원회'는 향후 5년 간 AI 생태계 구축에 총 250억셰켈(약 11조원) 투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국가 경제의 체질을 AI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데이터·컴퓨팅 인프라 확충, 히브리어·아랍어 기반 대형언어모델(LLM) 개발, 공공 부문 AI 도입 등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간 부문에서의 신규 투자도 AI로 쏠리고 있다. 블룸버그 캐피털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이스라엘 벤처 투자의 45%가 AI 분야에 집중됐다. 이는 투자 비중 면에서 세계 1위 수준이다. 요드팟 하렐 부크리스 블룸버그 캐피털 디렉터는 "민간 자본이 이미 AI에 집중된 상황에서 정부의 대규모 재정 투자가 마중물 역할을 한다면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인프라·인재 수급·규제 완화 등 전방위 개선 착수

이스라엘 정부는 그 동안 소프트웨어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 온 하드웨어의 인프라를 강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AI 모델을 훈련시킬 자체 컴퓨팅 자원이 부족해 해외 클라우드와 슈퍼컴퓨터 자원에 의존해야 했다.

드로르 빈 이스라엘 혁신청(IIA)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이스라엘 최초의 AI 슈퍼컴퓨터인 '새로운 시대의 클라우드(The Cloud of the New Era)'가 정식 가동을 시작했다"며 "개통과 동시에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수요가 급증해 추가 확장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력 수급의 불균형 문제도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드로르 빈 CEO는 "혁신청 조사 결과 현재 이스라엘 생태계에는 1500명의 고급 AI 전문가가 부족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전문가는 육성에 10년 이상이 걸리는 석·박사급 인력이지만, 학계에서 배출하는 인력은 연간 300~400명에 불과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이스라엘 혁신청은 '재교육'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물리학이나 생물학 등 기초과학 분야의 기존 과학자들을 AI 전문가로 전환하는 집중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다. 이는 과거 고등학교 단계부터 인재를 길러내 사이버 보안 강국을 만들었던 성공 모델을 AI 분야에도 이식하겠다는 전략이다. 빈 CEO는 "재교육 프로그램 확대와 해외 인재 유치를 병행해 인력난을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공공 부문 '규제 샌드박스' 도입해 AI 혁신 지원

이스라엘 정부는 AI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장벽도 낮출 계획이다. 다간 총괄은 "과거 드론 규제를 선제적으로 완화해 실증한 결과 이스라엘이 드론 분야에서 선도국이 될 수 있었다"며 "이 모델을 AI에도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스라엘 교육부는 학교에 AI 학습 도구를 시범 도입하고, 보건부는 병원 시스템을 개방해 AI 기술을 검증하는 샌드박스를 운영 중이다. 정부가 주도해 공공 시스템을 거대한 테스트베드(시험대)로 만들고, 스타트업에는 초기 검증 시장을 제공하는 구조다.

이를 토대로 이스라엘은 AI 기술력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삼아 '세계 5대 AI 선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간 총괄은 "AI 투자와 생태계 조성 계획은 안보 불안과 경기 둔화의 '이중고' 속에서도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