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로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를 연 오픈AI가 최근 경쟁자들의 거센 추격에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막대한 AI 인프라 투자 계획과 신사업 확대로 여전히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오픈AI가 후발주자에 시장 선두 자리를 뺏기면 회사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 메타, xAI 등 미국 빅테크와 중국 테크 기업들까지 앞다퉈 AI 모델 성능을 강화하면서 한 기업이 AI 산업을 주도하던 시대를 지나 여러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격동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구글의 맹추격에 대응해 코드 레드(code red·비상 경보)를 발동했다. 구글의 최첨단 AI 모델 '제미나이 3'가 오픈AI의 GPT-5를 능가하는 성능으로 이용자 수를 빠르게 늘려가기 시작한 데 따른 조치다. 지난 2022년 챗GPT를 세상에 공개해 AI 혁신을 주도한 오픈AI에 충격을 받아 '코드 레드'를 발동했던 구글이 3년 만에 오픈AI를 따라잡은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챗GPT 주간 사용자가 8억명을 넘어섰고, 전체 AI 앱 다운로드 건수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성장률은 최근 들어 둔화하는 추세다.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 챗GPT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6%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제미나이 사용자는 AI 영상 편집 도구 '나노 바나나'의 호응에 힘입어 30% 급증했다.
위협을 느낀 올트먼 CEO는 영상 생성 AI '소라' 개발을 포함한 다양한 수익화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하고 당분간 챗GPT 성능 개선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위기감을 느낀 오픈AI는 차세대 모델 'GPT-5.2' 출시를 예정보다 약 2~3주 앞당겨 이르면 이번주에 출시하기로 했다고 주요 외신은 전했다.
시장에서는 챗GPT의 독주체제가 흔들리면서 오픈AI의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글을 비롯한 경쟁사들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성능 격차를 좁혀온다면 오픈AI가 올 들어 연달아 체결한 대규모 AI 인프라 계약을 감당하지 못하고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오픈AI 앞으로 8년간 AI 인프라에 1조4000억달러(약 2000조원)에 투자하기로 밝혀 시장 일각에서는 'AI 버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실제 영화 '빅 쇼트'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미국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오픈AI는 넷스케이프의 전철을 밟고 있다"며 "현금을 빠르게 소진하며 파멸의 길을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넷스케이프는 1990년대 중반 전 세계 웹 브라우저 시장의 90%를 독점하던 혁신 기업이었지만, 후발주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격적인 추격에 밀려 결국 시장에서 도태됐다. 버리가 오픈AI를 넷스케이프에 비유한 이유는 현재 '오픈AI 대 구글' AI 경쟁 구도가 과거 '넷스케이프 대 MS'의 웹 브라우저 구도와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오픈AI는 올해 10월 기준 기업가치가 5000억달러(약 730조원)로 평가받는 세계 최대 스타트업이지만, 검색·광고 사업이 탄탄한 구글과 달리 안정적인 수익원이 아직 없어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AI 산업에서 선두 자리를 유지하려면 앞으로도 AI 기술과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수년 내 흑자 전환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올트먼 CEO는 올해 200억달러 매출을 전망했고, 2030년까지 이를 수천억 달러로 키우겠다고 자신했지만, 2029년까지도 적자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월가에서는 오픈AI의 영업손실이 2028년 740억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버리도 "오픈AI가 600억달러를 조달하더라도 회사의 현금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HSBC는 오는 2033년까지 오픈AI의 매출과 지출 계획의 격차가 2070억달러(약 303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오픈AI가 오라클, 엔비디아, AMD 등과 체결한 계약이 이른바 '순환 거래'에 얽혀있다는 점도 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다. AI 인프라 기업이 고객사에 투자하거나 자금을 빌려주고, 고객사는 그 돈으로 다시 인프라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순환 거래 구조는 이를 지탱하는 AI 수요가 비용을 감당할 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않으면 AI 거품이 꺼져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구글 등 경쟁사가 두각을 나타낼수록 오픈AI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순환 거래 구조인 AI 공급망을 떠받치기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브렛 어윙 퍼스트 프랭클린 파이낸셜 연구원은 "오픈AI의 복잡한 자금 조달 구조, 순환 거래, 부채 문제 등이 부각되면서 시장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런 문제는 알파벳(구글 모회사) 생태계에도 존재하지만, 오픈AI의 경우 상당히 극단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투자 심리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말했다.
챗GPT를 중심으로 검색, 쇼핑, 소셜미디어 플랫폼, 웹 브라우저 등으로 AI 생태계 확장에 나선 오픈AI와 달리 구글은 이미 클라우드, 검색, AI 칩 설계 등을 아우르는 '풀스택'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위협 요인이다. 이미 인프라를 갖춘 구글은 AI 성능 개선에만 주력하면 되지만, 오픈AI는 부족한 인력과 자금으로 사업을 다각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 과정에서 AI 모델 개발 속도가 늦어져 구글에게 따라잡혔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상 체제를 가동 중인 오픈AI가 최소 8주간 챗GPT 성능 개선에 전사 역량을 동원하면서 차세대 AI 디바이스(기기) 경쟁에서도 구글이나 메타에 밀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올트먼 CEO는 지난 8일 미국 기자들과 만나 "오픈AI의 경쟁자는 구글이 아니라 애플"이라면서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이 AI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기기에 의해 결정될 것이고, 스마트폰은 AI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앞서 오픈AI는 지난 5월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를 지낸 조니 아이브의 AI 기기 스타트업 'IO'를 65억달러에 인수하고 차세대 AI 기기를 2년 내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메타, 구글, 중국 알리바바 등이 최근 AI 모델을 연동한 스마트안경을 앞다퉈 공개하는 등 차세대 기기 경쟁도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AI 업계 관계자는 "오픈AI는 AI 시대의 문을 열었지만 후발주자들이 빠르게 추격하면서 도전에 직면했다"며 "장기적으로는 수익화가 핵심이기 때문에 오픈AI의 미래는 막대한 비용 지출을 상쇄할 수익 모델 구축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