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 인구의 스마트폰에 AI를 심어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인도 시장을 두고 초저가 인공지능(AI) 요금제와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앞세운 선점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구글은 10일(현지 시각) 인도에서 월 5달러(약 7000원) 이하에 이용할 수 있는 새 구독 상품 'AI 플러스(AI Plus)'를 내놓고 대중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오픈AI는 그보다 앞서 저가형 상품 '챗GPT 고(ChatGPT Go)'를 출시해 AI 유료 요금제의 가격 기준선을 5달러 안팎으로 낮춘 상태입니다.
구글 AI 플러스는 인도에서 첫 6개월간 월 199루피(약 2.21달러), 이후에도 월 399루피(약 4.44달러)에 제공되는 저가형 AI 요금제입니다. 기존 구독 상품인 AI 프로(월 1950루피)와 비교하면 프로모션 가격 기준 약 10분의 1 수준으로, 사실상 챗GPT 고를 정면으로 겨냥한 가격 책정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최신 언어 모델 '제미나이 3 프로'와 이미지 편집 모델, 영상 생성 기능, 노트북LM 기반 심층 연구 기능 등을 제공하고, 구글 포토·드라이브·지메일에서 함께 쓰는 200GB 클라우드 스토리지를 번들로 붙였습니다. 안드로이드 이용자를 구글 서비스에 묶어두려는 이른바 '락인(lock-in) 전략'이라는 분석입니다.
오픈AI는 무료 버전보다 메시지·이미지 생성·파일 업로드 한도를 약 10배 늘린 챗GPT 고에 더해, 일부 제휴를 통해 최대 1년 무료 제공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선점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AI 검색 스타트업 퍼플렉시티는 인도 통신사 에어텔과 손잡고 프로 요금제 1년 무료 혜택을 내걸었고, 구글도 인도 최대 통신사 릴라이언스 지오와 제휴해 특정 5G 요금제 가입자에게 AI 프로 18개월 무료 이용권을 제공하는 등 통신사 번들을 통한 가입자 쟁탈전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모습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월 5달러 미만 소비자용 AI 요금제를 둘러싼 가격 경쟁처럼 보이지만, 배후에는 인도 AI·클라우드 인프라를 선점하려는 장기 패권 싸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2030년까지 인도 AI·클라우드·물류 인프라에 350억달러를 추가 투입해 10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9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회동한 직후 아시아 최대 규모인 175억달러 투자 계획을 내놨습니다. 구글 역시 남부 비사카파트남에 150억달러를 들여 글로벌 AI 허브이자 데이터센터 역할을 할 시설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들 3개사가 최근 발표한 대(對)인도 투자 계획만 합쳐도 670억달러(약 95조원)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인도에 이처럼 공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인도가 '포스트 중국' 전략 거점으로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미·중 갈등과 중국의 불투명한 규제 환경 속에서 미국 IT 기업들이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술 허브를 찾는 가운데, 인도는 영어 구사 인력과 거대한 소비 시장, 데이터 주권을 앞세운 정책으로 대규모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자국민 데이터와 주요 산업 데이터를 가능하면 인도 내에서 처리하도록 유도하며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와 이른바 '주권 클라우드' 구축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힌디어와 영어를 포함한 다언어·다문화 환경은 글로벌 AI 모델을 시험·튜닝하기에 적합한 시험장으로 평가됩니다.
반면 저작권과 데이터 규제는 빅테크에 잠재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최근 AI 기업이 모델 훈련에 활용한 콘텐츠에 대해 매출의 일부를 로열티로 납부하고, 이를 창작자에게 배분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했습니다. 미국처럼 플랫폼들이 온라인 공개 자료 학습을 '공정 이용'에 가깝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벌이는 방식이나, 일본처럼 텍스트·데이터 마이닝에 폭넓은 예외를 허용하는 모델과는 다른 접근입니다. 유럽연합(EU)이 저작권자가 AI 학습에서 자기 콘텐츠를 빼달라고 미리 요청할 수 있게 한 방식과도 결이 다릅니다.
미국영화협회(MPA)와 인도 IT업계 단체 나스콤(NASSCOM)은 이를 두고 "혁신에 대한 세금"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방대한 AI 데이터셋 특성상 개별 창작자가 자신의 저작물만 골라 사용 중단을 요구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미 일부 분야에서 적용되거나 논의 중인 데이터 현지화 의무까지 더해질 경우, 인도 시장 공략에 나선 글로벌 AI 기업들의 비용 구조와 수익성은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업계에서는 인도에서 벌어지는 이런 가격·투자·규제 삼각 경쟁이 향후 글로벌 AI 질서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인도에서 월 5달러 이하 AI 요금제가 사실상 표준 가격대로 자리 잡고, 로열티와 데이터 주권 모델이 제도화될 경우 다른 신흥국과 아시아 국가의 규제·요금 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