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블프) 기간,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올라온 반응입니다. 20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삼성·LG TV를 사기 위해 오픈런이 벌어졌지만, 최근에는 "그런 진풍경이 사라졌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 TV의 존재감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은 중국 업체들의 추격뿐 아니라, 소비가 위축된 데 이어 코로나19 이후 유통 구조까지 바뀌면서 한국 프리미엄 TV에 불리한 시장 환경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지난달 28일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베스트바이 매장에서 삼성 TV를 쇼핑하고 있는 풍경./AP연합뉴스

10일 시장조사업체 어도비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올해 미국 블프 온라인 매출은 118억달러로 전년 대비 9.1%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CNN·CBS 등 현지 매체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실질 증가폭은 1%대"라고 분석했습니다. 지출은 늘었지만 구매력은 회복되지 않은 셈입니다.

세일즈포스 집계를 봐도 블프 기간 온라인 주문량은 전년 대비 1% 줄었고, 거래당 구매 단위도 2% 감소했습니다. 반면 평균판매가격(ASP)은 7% 상승했습니다. '덜 사도 더 내야 하는' 고물가 패턴으로, 단가가 높은 TV에는 악재입니다.

오프라인 쇼핑 감소도 TV 시장에는 타격이 컸습니다. 리테일넥스트에 따르면 블프 당일 오프라인 방문객은 전년 대비 3.6% 감소했습니다. TV는 크기·패널 특성상 여전히 매장에서 실물을 확인해 구매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소비 중심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한 올해는 더 불리했다는 지적입니다. 온라인에서는 패션·토이 등 '클릭 구매가 빠른' 카테고리가 혜택을 가져가는 구조가 강화됐습니다.

유통 구조의 변화도 한국 TV에 영향을 줬습니다. 베스트바이·월마트 등 대형 유통사는 최근 2~3년간 대량 직매입 후 블프에서 재고를 털어내는 방식에서 실시간 재고관리·저재고 운영(JIT) 구조로 전환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초특가 TV 딜을 만들어내던 동력을 약화시켰습니다. 특히 제조원가와 패널 단가가 높은 한국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미니LED TV는 유통사의 프로모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반 가격비교의 급부상이 시장 구조를 흔들었습니다. 어도비는 올해 블프 기간 미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유입된 AI 기반 쇼핑 트래픽이 전년 대비 770~800%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오픈AI·퍼플렉시티·아마존 '루퍼스' 등이 가격·스펙을 자동 비교해 추천하면서, 소비 기준은 '브랜드 선호'에서 '가격 최적화'로 이동했습니다. 알고리즘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TCL·하이센스 모델을 상단에 노출시키는 경향이 강해, 삼성·LG 같은 고가 제품군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블프 자체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도 낮아졌습니다. CNBC는 "이제 블프가 최저가 이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부 유통사의 '정가 인상 후 할인' 관행이 불신을 키웠고, "진짜 딜은 1월 재고정리 시즌에 나온다"는 인식도 확산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TV의 존재감이 예전만 못한 것을 단순히 '경쟁력 약화'로 보기는 어렵다"며 "미국 TV 시장은 팬데믹 이후 저재고·저마진 운영, AI 기반 가격 최적화, 오프라인 트래픽 감소라는 세 가지 구조 변화를 동시에 겪는 과도기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 같은 흐름은 프리미엄 제품군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며 "AI 가격비교 구조가 더 고도화되면 한국 TV 브랜드에도 압박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