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게도 가성비 높은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의 출시가 대형 하이퍼스케일러(AI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 업체)의 지출을 가속했다. 컴퓨팅 인프라에 투자해 성능을 높이면 이후 운영 비용을 낮출 수 있고, 사용자 수와 사용량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윌리스 차이 누빈(Nuveen) 글로벌 주식 대표는 'AI 거품론'에 대해 "인프라 투자의 지속 가능성과 참여 기업의 자본시장 밸류에이션을 구분해서 살펴봐야 한다"면서 "가격은 낮추고 사용량을 늘리는 구조적인 변화를 통해 거대 언어 모델(LLM) 관련 마진이 줄어들더라도 인프라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윌리스 차이 - 누빈 글로벌 주식 대표, 미국 조지타운대 경영학, 전 누빈 글로벌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 대표, 전 미국교직원연금기금TIAA) 매니징 디렉터, 전 골드만삭스 주식 리서치 담당 /사진 누빈

누빈은 127년 역사의 자산운용사로 운용 자산이 1조4000억달러(약 2060조원)에 달한다. 본사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다.

차이 대표는 신흥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 전략 포트폴리오 운용을 총괄한다. 이와 함께 글로벌 기술 섹터 관련 리서치 총괄도 겸하고 있다. 2006년 누빈 합류 이전에는 골드만삭스에서 주식 리서치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AI 관련 매출이 투자 규모에 비해 미미하지만, 향후 수익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크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장기적으로는 "AI가 점점 더 많은 소비자와 기업,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퍼져갈 것"이라면서 "새로운 앱 개발에 따라 AI 생태계 내 수익원이 여러 영역으로 분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초기에는 수익의 중심이 인프라에 집중돼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앱과 데이터 쪽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AI 거품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시장 참여자가 현재 우리가 AI 거품의 어느 국면에 놓인 것은 아닌지 궁금해한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련 인프라 투자의 지속 가능성과 참여 기업의 자본시장 밸류에이션을 구분해서 살펴봐야 한다. 인프라 투자 비용은 2026년 약 5000억달러(약 729조원)에 근접할 것으로 추정된다. 2022년 11월 챗GPT 출시로 촉발된 성장세가 반영된 액수다. AI 관련 누적 설비투자(CAPEX) 규모가 2029년까지 3조달러(약 4374조원)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AI 관련 매출이 유의미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투자 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미미하다."

거품 붕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인가.

"반대로 향후 수익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크다. 물론 이 같은 기대가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고 업계가 판단한다면 지출이 둔화할 수도 있다. AI 관련 투자의 상당 부분이 공격적인 투자 의지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현금 흐름을 확보한 수익성 높은 하이퍼스케일러로부터 나온다. 이 점이 낙관적인 수익 전망의 중요한 근거다."

닷컴 버블 때와 비교하면 어떤가.

"AI 붐은 닷컴 버블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거대하고 수익성 높은 기업이 대규모 인프라 구축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닷컴 버블 시기를 지나면서 인터넷은 일상적인 기술이 됐다. AI 기술도 비슷한 전철을 밟는다면 거품 붕괴는 필연적인 과정 아닐까.

"장기적으로 AI는 점점 더 많은 소비자와 기업, 앱으로 퍼져갈 것이다. 거품이 터질지, 서서히 꺼질지 여부는 기대와 현실 간의 격차에 달려 있는데, 그 격차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새로운 앱 개발에 따라 AI 생태계 내 수익원이 여러 영역으로 분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초기에는 수익의 중심이 인프라에 집중돼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앱과 데이터 쪽으로 옮겨갈 수 있다."

자본시장 밸류에이션은 어떤가.

"자본시장의 엄청난 수익률이 낙관적인 전망을 떠받치고 있다. 예를 들어 MSCI세계정보기술지수(MSCI World Information Technology Index)는 챗GPT 출시 이후 연 34%의 수익률(복리 기준)을 기록했다. 참고로 지난 20년 동안 연평균 수익률은 15%였다. 주가수익비율(PER) 등의 지표를 통해 본 대형 기업의 명목 밸류에이션이 다소 높긴 하지만 과도하게 우려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AI 관련 지출이 대폭 늘면서 일부 기업은 이전보다 몇 배 높은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 같은 규모의 지출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가 문제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의로고를 함께 배치했다. /사진 로이터연합

수익에 비해 지출이 너무 과도한 것 같은데.

"AI 서비스 운영사가 매출 및 이익을 내려면 우선은 충분한 용량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수주 잔고가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기업이 이를 수년에 걸쳐 매출로 전환할 것이다. 그런데 설비투자 및 그와 관련한 감가상각 비용은 더 일찍 발생한다. 이 같은 시차는 당연한 것이다. 향후 매출 성장이 오늘날 투자를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클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8년간 총 1조4000억달러(약 2041조2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한 오픈AI의 결정도 타당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야심 찬 계획이지만, 오픈AI가 참여하는 전체 생태계 차원의 투자 규모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5000억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주로 소프트뱅크와 오라클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스스로를 AI 확장에 매우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 업계 전체가 그 성공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 오픈AI의 전략인 듯하다. 오픈AI 생태계 내 파트너사는 충분한 자본력을 갖추고 있다. 오픈AI 같은 대형 비상장 기업은 신용거래와 지분 투자를 통해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향후 상장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추가 자본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취임 직후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계획을 국가 전략 사업으로 흡수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오픈AI와 소프트뱅크, 오라클이 합작회사를 설립해 4년간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최대 5000억달러를 투자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지 에너지 인프라 확충과 신산업 육성 정책과도 맞물려 추진되면서 파급력이 커질 전망이다.

전력 부족도 심각한 도전이다.

"훨씬 많은 발전 용량이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AI 인프라 투자 열기가 발전 용량 확대를 촉진할 것으로 본다. 반도체 기술 발전도 전력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챗GPT가 하나의 질문을 처리하기 위해선 2.9 (와트시)의 전기가 필요하다. 반면 구글 검색에는 0.3 의 전기가 쓰인다. 생성 AI(Generative AI) 검색보다 10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골드만삭스는 2022년 11월 챗GPT가 촉발한 생성 AI의 급격한 확산 여파로 2020년 240 (테라와트시)에 그쳤던 미국 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25년 한 해 600TWh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생성 AI 활용이 챗GPT와 제미나이 등 소수 플랫폼에 몰리는 것도 문제 아닌가.

"거대한 기술 시장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경쟁 구도라고 생각한다. 기업용 LLM 시장은 오픈AI와 구글, 앤트로픽 주도의 과점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각 모델의 성능은 점차 비슷해지고 있다. 따라서 향후 시장 주도권은 개별 LLM을 중심으로 구축되는 생태계와 새로운 앱을 통한 혁신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중국의 생성 AI 딥시크의 경우처럼 저렴한 고성능 AI 모델이 쏟아져 나온다면 시장에 큰 충격이 전해질 것 같다.

"흥미롭게도 가성비 높은 AI 모델 딥시크 출시가 대형 하이퍼스케일러의 지출을 가속했다. 컴퓨팅 인프라에 투자해 성능을 높이면 이후 운영 비용을 낮출 수 있고, 사용자 수와 사용량은 늘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격은 낮추고 사용량을 늘리는 구조적인 변화를 통해 LLM 관련 마진이 줄어들더라도 인프라 투자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