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닷컴 버블과 다르다. 인터넷 기반 플랫폼은 닷컴 버블이 꺼지고 한참 후에야 등장했지만, AI는 지금 당장 세계가 도입해야 하는 기술이다. AI 열풍으로 한국도 제조·에너지·방위산업(방산)에서 결정적 기회를 맞았다."
닷컴 버블 붕괴로 약 80%의 인터넷 기업이 파산했지만, 인터넷 산업 자체가 무너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버블이 남긴 인프라와 인재, 기술이 다른 산업으로 퍼지며 새로운 혁신을 낳았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11월 20일 인터뷰에서 "지금 전 세계 자본이 AI 산업에 몰려드는 현상 역시 또 다른 혁명을 촉발할 것"이라며 "AI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문명 대전환이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앞서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포노 사피엔스'에 이어, AI 활용 능력이 인간의 표준이 되는 'AI 사피엔스'의 등장을 조명한 바 있다. 그는 "아직 AI의 기술 성숙도가 인공 일반 지능(AGI)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서도 "AI가 한국 제조 산업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지컬 AI(Physical AI·자율주행차나 로봇 등 물리적 형태가 있는 AI) △방산 △에너지 인프라를 한국이 선점해야 할 핵심 산업으로 꼽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AI 거품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닷컴 버블과 달리 AI는 이미 준비된 인프라에서 성장하고 있다. 1995년 닷컴 버블이 등장했을 때 인터넷을 쓰는 사람은 극히 적었고 버블이 꺼진 2000년에도 이용률은 낮았다. 유튜브(2005년), 아이폰(2007년), 에어비앤비(2008년), 우버(2010년) 같은 인터넷 플랫폼은 모두 버블이 붕괴한 후에야 등장했다.
반면, 지금의 AI는 전 세계 기업과 정부가 모두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클라우드 기업, 금융기관, 제조 업체 모두 그래픽처리장치(GPU) 없이는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 투자자도 달라졌다. 이제는 마이클 버리(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예견하고 공매도에 베팅해 막대한 부를 챙긴 펀드매니저)의 말만 듣고 움직이지 않는다. 젠슨 황, 일론 머스크의 비전과 실적을 비교해 판단한다. 대중의 기술 이해도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AI 기술 성숙도는 어디까지 발전했나.
"현재의 트랜스포머 구조로 AGI는 불가능하다는 게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GPT-5의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 발생률이 16.9%에서 5% 이하로 떨어지는 등 안정성이 개선됐지만, 인간을 뛰어넘는 전지전능한 AGI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초지능 경쟁이 주춤한 상황에서 산업은 현실적으로 수익이 나는 쪽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앞으로 10년은 '돈 버는 AI' 시대가 될 것이다."
돈 버는 AI 라니.
"버티컬 AI(Vertical AI), 즉 전문 분야 AI가 승부처가 된다. 시가총액 600조원이 넘는팔란티어가 대표적이다. 팔란티어는 단순 기술 회사가 아니라, 문제 해결형 데이터 분석 기업이다.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드론 공격 성공률을 50%에서 80%로 높였다. 국방 분야만이 아니다. 현재 700개 이상 기업이 팔란티어 솔루션을 통해 생성 AI (Generative AI)를 실제 업무에 적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처럼 국방·물류·공급망·에너지 등 전문성이 높은 AI가 승리할 것이다. 한국 기업에도 큰 기회가 될 것이다."
미·중 AI 기술 패권 경쟁 속 한국이 집중해야 할 전략 분야를 꼽는다면.
"피지컬 AI, 방산, 에너지 인프라다. 피지컬 AI의 핵심이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인데, 아직은 건방져 보이거나 불안해 보인다는 평가가 있다. 휴머노이드가 인간 생활에 들어온다면, 사람들은 섬세한 동작과 배려 등 정서적 품질을 갖춘 로봇을 찾게 될 거다. 기술이 일상화된 뒤에 생존을 결정짓는 요인은문화와 감성이다. 이런 디테일은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휴머노이드와 인문학, 한국의 K-콘텐츠 팬덤 등과 융합해 피지컬 AI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피지컬 AI를 키우기 위한 전제 조건은 제조업의 AI 역량 강화인데, 방산에서 그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전쟁 방식이 바뀌었다. 드론·로봇·무인 체계가 승부를 가른다. AI 기반 제조·운용 능력이 핵심이지만, 미국은 이 능력이 부족하다.
결국 우방국인 한국 의존도가 높아지며 한국이 '민주주의의 병기창'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로 미국 방산 기업 안두릴은현대차, 대한항공과 무인 전투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건립되는 흐름도 한국에 호재다.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처럼 GPU 100만 개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메모리, 냉각장치(HVAC), 송전·변전, 원전 설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최고 역량을 갖춘 나라다. 유럽은 규제로 데이터센터 확장이 어렵기 때문에 미국과 동맹국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이다."
데이터 전략 면에선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데이터 주권이 곧 AI 주권이다. 우리는 네이버, 카카오 같은 고유 플랫폼을 통해 수십 년간 데이터를 축적하고 관리 기술을 확보했다. 세계 10대 강국 중 자국 플랫폼으로 거대 언어 모델(LLM)을 연구해 온 나라는 미국· 중국·한국 정도니, AI 주권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개인정보 보호에만 치중한다는 거다. 개인정보는 보호하되 데이터의 활용성은 키우는 방향으로 가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의료·금융·복지 AI는 데이터가 열려야 성장할 수 있다."
규제와 혁신 사이 균형점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혁신이 규제보다 두세 배는 앞서가도록 허용해야 한다. 한국은 규제 마인드가 강하다. 예컨대 미국에선 'AI 닥터'가 서비스되지만, 국내에선 개인정보 규제와 의사의 반대로 할 수 없다. 개인택시 업계의 반대로 우버를 막았지만, 과연 택시 업체가 돈을 벌어 회사나 산업에 투자할까. 사람들은 미국 기술 기업 주식을 산다. 이게 데이터가 보여준 현상이다. 유럽이 디지털·AI 산업에서 몰락한 이유도 규제 전문가가 기술 전문가를 이겼기 때문이다. 세계 20대 AI 기업 중 유럽 회사를 찾기 어렵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혁신의 속도를 규제가 앞서가면 안 된다."
정부 차원에서 시급히 추진해야 할 AI 정책 과제가 있다면.
"AI는 모두가 함께 레벨업해야 한다. 교육·복지·기업·정부가 새로운 게임 룰에 적응하려면, 전 국민 AI 문해력 향상이 필수다. 스마트폰 교육처럼 AI 교육을 전 국민 서비스로 만들어야 한다.
복지 분야에도 AI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부천시는 노년층 대상 AI 복지 콜을 도입해, 방문하지 않고도 독거노인의 음성으로 위험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농촌에서도 무인 모빌리티 서비스를 도입해 병원과 약국을 연결하고 건강 데이터 기반 맞춤 케어를 할 수 있다. 이는 고령화 시대에 현실적인 AI 활용법이다. 잘되면 청년 일자리와 지역 불균형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이 분야는 한국 기업이 세계 표준을 만들 수 있는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