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혁신 기술이 검색 엔진이나 소셜미디어(SNS)의 경우처럼 소수가 높은 마진을 누리는 형태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항공이나 태양광발전 패널처럼 치열한 경쟁과 만성적인 저(低)마진에 시달리는 형태로 귀결되는 경우도 있다. 인공지능(AI) 관련 경쟁은 가격 하락과 강력한 (반(半)개방형 모델인) '오픈웨이트(open-weight) 모델'의 등장, 비용 경쟁력을 앞세운 기업의 시장 진입 등으로 인해 점점 후자와 비슷해지고 있다."
스웨덴계 독일 경제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인 카를 베네딕트 프레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의 AI 산업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그의 주된 연구 분야 중 하나는 일의 미래(Future of Work)다. 2013년 '자동화·로봇 기술의 진전으로 향후 20년 안에 미국 일자리 중 47%가 사라질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고용의 미래' 보고서를 발표해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2019년 출간한 저서 '테크놀로지의 덫: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은 그해 파이낸셜타임스(FT) '올해의 최고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프레이 교수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막대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만큼 AI 관련 산업이 이익을 만들어 내긴 어려울 것"이라며 가까운 미래에 AI 거품 붕괴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AI 기술이 꾸준히 발전해도 기업이 그와 관련해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근로자를 재교육하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려면 통상 여러 해가 걸리는 만큼 자금 조달이 너무 빨리 진행된다면 기대한 만큼 수익을 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프레이 교수는 그러면서도 거품 붕괴가 AI 기술 발전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다는 뜻은 아니라면서 "재무적으로 건실하고 사업 경쟁력이 있는 기업은 경기 하강 국면을 인수합병(M&A)을 통한 성장 가속의 기회로 삼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가까운 미래에 AI 거품이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지고 AI 기술 발전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다는 뜻은 아니다. 강력한 신기술에 막대한 자금이 몰리면서 기대치가 높아지면 대부분 대참사가 아니라 구조조정이 뒤따른다. 재무적으로 건실하고 사업 경쟁력이 있는 기업은 경기 하강 국면을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 가속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비교 대상이 될 만한 사례가 있을까.
"19세기에 철도 산업이 휘청인 건 철도 기술이 쓸모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수익이 나는 속도에 비해 자본 유입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교통량과 산업, 사용자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노선 건설에 속도가 붙었다. 오늘날 AI 기술도 그와 비슷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AI 기술이 꾸준히 발전하더라도 기업은 그와 관련해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근로자를 재교육하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 같은 변화는 통상 수년에 걸쳐 진행된다. 자금 조달이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면 기대한 만큼 수익을 내기 어려울 수 있다."
1825년 최초의 증기기관차가 출현한 후 15년 만에 영국에 3200㎞의 철도가 구축됐다. 새로운 철도 회사가 500곳 이상 생겨났고, 이들 주가는 500% 넘게 급등했다. 하지만 과잉 투자로 인한 거품이 터지면서 철도 회사 파산과 주가 급락이 뒤따랐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혁신은 완성됐고 영국은 산업 발전을 위한 효율적인 철도 인프라를 보유할 수 있었다.
막대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만큼 AI 관련 산업이 이익을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일 것 같다.
"그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아니요'다. 우리가 AI 거품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혁신 기술이 검색엔진이나 SNS처럼 소수가 높은 마진을 누리는 형태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항공이나 태양광발전 패널처럼 경제에 필수적이면서도 치열한 경쟁과 만성적인 저마진에 시달리는 형태로 귀결되는 경우도 있다. AI 관련 경쟁은 가격 하락과 강력한 오픈웨이트 모델 등장, 비용 경쟁력을 앞세운 기업의 시장 진입 등으로 인해 점점 후자와 비슷해지고 있다."
닷컴 버블 때와는 어떻게 다른가.
"1990년대 후반 거품이 끼는 동안 정보기술(IT)이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 1995~ 2004년 미국 노동생산성은 연간 약 2.8% 성장했는데, 이는 이전 20년간 성장률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이후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지난 20년 동안 정체기를 겪은 후 2024년에 약 2.7%로 다소 개선됐지만, 이를 AI 덕분이라고 판단하는 건 너무 성급하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몇 달 동안 미국 대기업의 AI 도입률은 하락세를 기록했다. 만약 생산성 상승이 AI 덕분이었다면, 도입률이 떨어지면서 생산성도 둔화될 것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이 직원 250명 이상 약 120만 개 미국 기업을 상대로 AI 활용률을 조사한 결과, 지난 6월 13.5%에서 8월 12%로 하락했다. 2023년 관련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첫 하락이다.
또 어떤 부분이 다른가.
"투입되는 자본의 성격에도 차이가 크다. 닷컴 시대에는 내구성 있는 인프라에 자금이 투입됐다. 일례로 그 시절에 구축한 광섬유 및 백본 네트워크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AI 기술의 핵심인 칩과 메모리는 몇 년이 지나면 경제성을 잃게 된다.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와트당 비용을 떨어뜨려 이전 장비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구형 광섬유는 양쪽 끝단 장비만 교체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지만, 오늘날의 AI 설비는 지속적인 재투자를 요구한다. 결론적으로 닷컴 시대는 거품이 끼는 동안 가시적인 생산성 향상이 있었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인프라를 남겼다. AI의 경우 둘 중 어느 한 쪽도 확실하지 않다."
닷컴 버블에 비해 붕괴 시 위험이 더 크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까.
"닷컴 버블 붕괴로 주가가 급락했고 투자자가 고통을 당했지만, 그 피해는 대부분 주식시장 안에 머물렀다. 하지만 AI의 경우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자금을 채권, 구조화 상품, 장기 리스 등 신용을 통해 조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주가 하락뿐만 아니라 대출 실적 악화, 재융자 규제와 대출 기준 강화 등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리스크가 금융 시스템의 핵심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거시 경제 환경도 다르지 않나.
"1990년대 후반 미국 연방 정부는 예산은 흑자를 유지했고, 부채 비율은 하락 중이었다. 이자 비용은 적정 수준이었으며 조달할 수 있는 자금 여력도 풍부했다. 하지만 지금은 청정에너지 투자, 국방 지출, 데이터센터 건설 등 수많은 대규모 프로젝트가 동일한 자본을 수주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차입 비용은 상승하고,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8년간 총 1조4000억달러(약 2041조 2000억원)를 AI 인프라에 투자하기로 한 오픈AI의 결정은 합리적인 것일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1조4000억달러를 8년에 걸쳐 분배하면 매년 약 1750억달러(약 255조1500억원)를 지출해야 한다. 그런데 오픈AI의 2025년 연간 매출은 약 100억~120억달러로 추정된다. 유료 사용량이 빠르고 안정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면 합당한 투자로 보기 어렵다. 더구나 (오픈AI의 사업 기반인) 거대 언어 모델(LLM)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집중적으로 훈련한 데이터나 그와 유사한 문제에서는 우수한 성능을 보이지만, 그 경험 범위를 벗어난 새로운 작업에서는 급격히 성능이 저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