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데이터센터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만 높여서는 더 이상 속도 경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대규모 AI 모델을 구동하려면 필요한 데이터를 즉시 불러와야 하는데, 이 과정이 느려지면 시스템 전체가 병목이 걸리기 때문이다.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컨트롤러 기업 파두(FADU)는 4일 서울 삼성동 본사에서 열린 기술 간담회에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차세대 SSD와 전력반도체 전략을 제시하며 "AI 시대에는 스토리지와 전력 효율이 시스템 성능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OCP 코리아 테크데이 파두 부스에 전시된 SSD./뉴스1

파두는 올해 들어 실적 개선과 글로벌 고객 다변화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파두의 올 1분기 주요 고객 매출은 전분기 32억원에서 334억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주요 고객을 샌디스크로 보고 있다. 아울러 파두는 최근 600억원이 넘는 대형 수주를 따내며 미국·일본·대만 등 글로벌 낸드플래시 생태계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AI 데이터센터 투자와 고객 다변화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파두의 전략 방향도 명확하다. 반도체 성능이 공정 미세화만으로는 더 오르기 어려워지면서, 이제는 용도에 맞춘 특화 하드웨어가 시스템 성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는 판단이다. 특히 최근 2년간 생성된 데이터가 인류 전체 데이터의 90%를 차지할 만큼 데이터가 폭증하면서, 기업들은 장비 가격뿐 아니라 전력·냉각·유지비를 모두 포함한 TCO(총소유비용)를 핵심 경쟁 지표로 삼고 있다. 파두는 "전력을 적게 쓰면서 데이터를 더 빨리 공급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AI 모델이 복잡해지면서 SSD 역할도 확대되고 있다.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속도는 빠르지만, SSD와 네트워크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병목이 생긴다. 특히 검색 기반 생성 AI(RAG), 벡터DB 기반 서비스가 늘면서 SSD가 랜덤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읽어오느냐(QoS·IOPS)가 AI 서비스 품질을 좌우하고 있다. 파두는 "GPU 옆에서 데이터를 즉시 공급하는 고성능 SSD가 앞으로 AI 인프라의 핵심 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

파두는 기존 소프트웨어 중심 SSD 구조에서 벗어나, 자주 쓰이는 핵심 연산을 하드웨어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전력 효율을 높이고 있다. 핵심 IP를 직접 설계해 다양한 낸드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고, 제한된 전력(23~24W) 내에서 최대 성능을 끌어올리는 구조를 구현했다.

차세대 SSD 계획도 공개됐다. 현재 Gen6 SSD는 기존 세대 대비 성능이 2배 이상 향상됐고 전력은 줄었다. 파두는 차세대 Gen7 SSD에서 데이터를 훨씬 더 빨리 읽고 쓰는 속도(1억 IOPS)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SSD 내부 처리 속도를 높이고 오류를 자동으로 바로잡는 기술 등을 함께 적용할 계획이다. 또 앞으로는 GPU나 CPU를 거치지 않고 SSD가 필요한 데이터에 바로 접근하는 방식(D2D)도 개발 중이다. 이렇게 되면 불필요한 경로를 줄여 AI 작업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력반도체(PMIC) 사업도 파두의 두 번째 성장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전력 효율이 조금만 개선돼도 비용 절감 효과가 크기 때문에 PMIC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파두는 SSD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전력을 관리해주는 반도체(PMIC)를 이미 개발해 글로벌 고객사 인증을 받고 있다. SSD 컨트롤러와 전력반도체를 세트처럼 함께 설계·공급하는 방식(컴패니언 PMIC)으로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남이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한국은 메모리와 파운드리는 세계 최고지만 SSD·NPU(신경망처리장치)·서버 소프트웨어 같은 시스템 레이어는 아직 비어 있다"며 "파두는 이 공백을 메워 AI 인프라 핵심 부품을 직접 설계하는 풀스택형 시스템 반도체 기업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어 "AI 시대에는 전력과 데이터 처리 효율이 경쟁력을 결정한다"며 "TCO를 낮추는 생태계를 파트너들과 함께 구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