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달리

LG헬로비전과 CJ ENM이 콘텐츠 사용료 산정을 두고 정면 충돌했습니다. 과거 'CJ헬로비전' 시절 한솥밥을 먹던 '옛가족'이었지만, 이제는 방송 송출 중단(블랙아웃)까지 거론하며 대립 구도로 맞서고 있습니다. 업계에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로 유료방송 정책 업무가 이관되는 과정에서 생긴 공백이 갈등을 키운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4일 방송업계에 따르면 방미통위는 지난 1일 LG헬로비전과 CJ ENM 실무자들을 불러 최근 불거진 콘텐츠 사용료 분쟁과 관련해 양측 입장을 청취했습니다. 이번 갈등은 LG헬로비전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가 마련한 '콘텐츠 사용료 공정 배분을 위한 산정기준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면서 본격화됐습니다. 이 기준안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방송 매출 감소분을 콘텐츠 사용료 산정에 반영해 비용 부담을 완화하자는 취지입니다. LG헬로비전은 해당 기준을 적용해 지난 9~10월 CJ ENM에 감액된 프로그램 사용료를 지급했습니다.

LG헬로비전은 코로나19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확산으로 유료방송 업황이 악화하면서 가입자가 감소했고, 이는 곧 방송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LG헬로비전의 가입자 수는 지난해 347만명으로, 2019년(396만명) 대비 12.3% 줄었습니다. CJ ENM이 제공하는 채널의 시청률도 동반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9년 대비 2024년 채널별 시청률 감소율은 투니버스 79.2%, 엠넷 66.2%, OCN 63.9%, tvN드라마 23.7%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CJ ENM은 LG헬로비전이 기존 계약 조건을 일방적으로 위반했다고 주장합니다. 업계에 따르면 CJ ENM은 최근 LG헬로비전에 "감액을 철회하고 사용료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오는 22일부터 tvN 등 12개 채널 송출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습니다. 사실상 계약 해지를 경고한 것입니다. 또 다른 케이블TV 업체인 딜라이브 역시 협회 기준안을 적용해 사용료를 감액하겠다는 공문을 CJ ENM에 발송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분쟁은 개별 사업자를 넘어 SO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SO들은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존 방식대로 사용료를 낼 수 없다"고 호소하고, CJ ENM 등 PP(채널사업자)들은 "일방적인 감액은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유료방송 구조의 근본적 이해충돌이 표면화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문제는 이 같은 갈등이 불거지는 가운데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부재중'이었다는 점입니다. 유료방송 정책 업무는 과기정통부에서 신설된 방미통위로 이관됐지만, 출범 이후 50여일간 '0인 위원회'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중재에 나서야 할 정부 기구가 구성조차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최근 위원장 후보자가 지명되고, 상임위원 1명이 임명됐지만 정상적인 방미통위가 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쟁 조정에 나설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정부가 나서야 할 시점에 사실상 아무도 없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장관 단독결정 체계였던 과기정통부와 달리 방미통위는 합의제로 운영돼 의사결정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출범 초기부터 제기됐던 '속도전 부재'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평가입니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행정처분 형태로 제재에 나서려 해도 7인 위원회가 완비되지 않으면 결정이 불가능하다"며 "의사결정에 4명 이상이 필요한 구조도 신속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피해는 시청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양측이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할 경우 tvN 등 주요 채널이 일부 지역에서 송출이 중단되는 '블랙아웃' 사태가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유료방송 시장이 가입자 감소와 광고 부진으로 이미 흔들리는 가운데, 시청권 갈등까지 겹치면 산업 전반의 '고사 위기'가 가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유료방송 구조 개편의 신호로 보고 있습니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런 혼란은 유료방송 업무를 방미통위로 이관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SO와 PP 간 콘텐츠 가치와 사용 비용에 대한 새로운 룰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며 "정부가 방미통위 구성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사용료 산정 기준과 분쟁조정 절차를 명확히 마련해야 시장 불안을 줄일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