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사간 분쟁으로 불린 '다크앤다커' 소송이 4년 만에 2심 판결로 사실상 종결됐다. 1심에서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됐던 아이언메이스는 항소심에서 배상액이 85억원에서 57억원으로 줄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아이언메이스의 영업비밀 침해 범위를 오히려 더 확대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넥슨의 '판정승'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서울고등법원 민사5-2부는 4일 넥슨이 제기한 영업비밀·저작권 침해 금지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아이언메이스가 침해한 영업비밀 규모를 1심보다 넓게 인정했다. 재판부는 P3의 프로그램·소스 코드·빌드 파일 등이 모두 특정 가능한 영업비밀이라고 판단하고 보호 기간도 1심의 2년에서 2년 6개월로 늘려 잡았다. 다만 P3 자료가 다크앤다커 개발에 미친 기여도를 15%로 제한하며 손해배상액을 57억원으로 산정했다.
저작권 침해는 1심과 마찬가지로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P3와 다크앤다커의 표현 형식이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다"며 넥슨의 청구를 기각했다. 넥슨이 영업비밀 외에 실질적 저작권 침해가 인정돼야 한다며 항소한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이번 소송은 2021년 넥슨의 미공개 프로젝트(P3) 핵심 인력들이 내부 자료를 개인 서버로 반출해 아이언메이스를 설립하고 다크앤다커를 제작했다는 고발로 시작됐다. 피고는 당시 P3 팀장으로 근무했던 최주현 현 아이언메이스 대표였다. 넥슨은 약 2700개에 달하는 빌드 파일·소스 코드가 유출됐다고 주장해 왔다.
항소심에서는 양측이 3D 모델링·시연 영상 등을 제시하며 공방을 벌였다. 넥슨은 "캐릭터 모델링 상당수가 동일하고, 문(door) 애셋의 가로 폭이 소수점 6자리까지 일치한다"며 자산 사용을 주장했다. 아이언메이스는 "광원·몬스터·함정 등 구현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며 독자적 개발을 강조했다. 최 대표는 마지막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해 "중세 판타지 FPS 장르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뿐"이라며 저작권 침해 주장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1심 선고 이후 다크앤다커의 사업 환경도 흔들렸다. 글로벌 플랫폼 에픽게임즈 스토어에서 게임이 삭제됐고, 크래프톤이 개발 중이던 모바일 버전도 아이언메이스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종료했다. 법적 불확실성이 길어질수록 파트너사 리스크 관리가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무 상황도 빠르게 악화됐다. 2024년 영업손실은 18억원, 순손실은 57억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 전환했다. 1심 배상금이 소송 충당부채로 반영되며 비용 부담이 확대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아이언메이스는 항소심을 앞두고 경영·개발 조직을 분리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공동 창업자인 최주현 디렉터가 대표이사가 되고 박승하 전 대표가 사장으로 올라선 구조다. 회사는 "글로벌 시장 대응"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법적 대응을 위한 재정비라는 해석도 나왔다.
넥슨은 이번 소송을 단순한 법적 분쟁이 아니라 게임업계의 개발 윤리·지식재산권 보호 기준을 재정립하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넥슨은 또 다른 미공개 프로젝트 'MX BLADE' 관련 자료 유출 의혹이 포착되자 관련 신생 게임사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개발자 이직·창업과 대형사의 개발 보안 강화 기준을 전면 재정의한 사건'으로 평가한다. 2심에서 저작권은 부정됐지만, 영업비밀로 인정되는 개발 자료 범위가 크게 넓어지면서 향후 인력 이동·스핀오프 창업·자료 관리 체계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대형 게임사들이 퇴사자들을 상대로 강력한 전직 금지 명분을 얻은 판결"이라며 "개발자들은 퇴사 후 전 직장에서 얻은 노하우와 내 창작물이 무관하다는 개발 과정 전체를 입증해야 하니, 창업의 문턱이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나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