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수 LG이노텍 사장이 지난달 17일 대전 카이스트 창의학습관 터만홀에서 후배 학생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LG이노텍 제공

문혁수 LG이노텍 대표이사가 2026년 정기임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가운데, LG이노텍은 아직 신사업에서 좀처럼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서버용 기판인 FC-BGA를 공급하고 있는 삼성전기와 달리, LG이노텍은 AI 서버 등 고부가 영역에서 FC-BGA을 아직 납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질적으로 제기돼 왔던 애플에 대한 의존도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LG이노텍의 사업 구조 다변화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FC-BGA는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고정해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대형화되고 있는 AI 반도체 등에 적합한 고부가 기판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2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이노텍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6655억원으로 지난해(7060억원)와 비교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LG이노텍은 문 사장이 대표이사에 오른 지난 2023년부터 지속적인 하락세를 겪고 있습니다. 전자부품업계 관계자는 "애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지 못하면서 사업 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FC-BGA 등 신사업에서 아직 의미 있는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LG이노텍은 삼성전기와 마찬가지로 FC-BGA를 차세대 먹거리로 낙점하고 집중 육성하기 위해 2022년 FC-BGA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2024년까지 413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삼성전기가 AMD와 구글, 브로드컴 등에 납품하고 있는 AI 서버용 FC-BGA 공급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AI 서버용 FC-BGA는 중앙처리장치(CPU) 등에 적용되는 기판과 비교해 설계 및 제조 난도가 높고, 부가가치가 높은 기판으로 꼽힙니다. 삼성전기는 FC-BGA 생산라인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래픽=정서희

삼성전기의 경우 반도체 전문가인 장덕현 사장의 역할이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장 사장은 지난 2002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지난 2021년 삼성전기 대표에 부임하기 전까지 메모리 반도체와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에서 반도체 개발 및 설계 업무를 주도해 왔습니다. 반도체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만큼 고객사 요구와 기술 트렌드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개발 과제 추진 속도가 빨라 사업 성과로 이어졌다는 평가입니다. 반면, 문 사장은 2009년 카메라모듈 사업을 담당하는 광학솔루션사업부에 입사해 반도체와 큰 연관이 없는 카메라모듈 분야에 몸 담아 왔습니다.

강성철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첨단 반도체 패키징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여기에 활용되는 FC-BGA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상황"이라며 "삼성전기가 패키징 분야 외부 인재 영입에 속도를 높이면서 사업 성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AI 서버용 FC-BGA의 진입 장벽이 높아 LG이노텍은 내년에도 대량 공급 계약 체결이 요원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통상 FC-BGA는 AI 반도체 등을 설계하는 기업에 맞춤형으로 공급되는 만큼 샘플을 탑재해 품질 인증 작업을 거치기까지 수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자부품업계 관계자는 "AI 서버용 FC-BGA를 납품하는 데는 최소 2~3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도체 기판 사업 실적도 애플 아이폰에 탑재되는 기판 공급량에 좌우될 것이다. 사업 구조 다변화에 대한 문 사장의 고심이 깊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