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D램 모듈./삼성전자 제공

인공지능(AI)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 폭증으로 D램 가격이 급등하면서 PC·노트북 제조사들의 원가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AI PC로 신규 라인업 출시를 준비해온 PC 업체들은 갑작스러운 원가 부담에 출시 일정을 조정하거나 제품 사양을 낮춰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PC 제조사들은 핵심 부품인 D램(DDR5 포함) 가격이 전년 대비 70%에서 일부 품목은 최대 170%까지 치솟으며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세계 PC 시장 1위인 레노버를 비롯해 HP, 델 등 해외 업체와 삼성전자, LG전자도 내년에 내놓을 AI PC, 태블릿 PC 등 제품 로드맵을 재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노트북 PC 시장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AI PC의 경우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타격이 가장 심각하다. AI PC는 기본 램 용량이 16기가바이트(GB)가 최소 사양이기 때문에 D램 가격 상승분이 그대로 제품 원가에 반영된다. 여기에 고성능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탑재도 필수라 생산 비용이 급격히 높아진다.

그동안 소비자 시장에서 AI PC의 대중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높은 가격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제품 출고가를 쉽게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반대로 제품 사양을 낮춰 원가를 절감하기엔 최근 서비스되는 AI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요구하는 하드웨어 수준이 높다. 가격을 올리거나 성능을 낮춰야 하는데 둘 다 쉽지 않은 선택인 셈이다.

문제는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D램, 낸드플래시 공급 부족이 2026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트렌드포스는 "D램 모듈 업체들이 실제 제품 출시 일정을 늦추거나 계획을 보수적으로 잡고 있다"고 전했다. 레노버는 이미 오를 대로 오른 D램을 '사재기'하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올해 말 기준 레노버는 메모리 재고량을 평소보다 50% 이상 더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HP도 최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메모리 비용이 일반 PC 비용의 15~18% 수준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수준으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PC 제조사인 델도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메모리 비용이 상승한 적은 없었다"며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모든 제품의 원가 기준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PC업체 관계자는 "AI PC라는 흐름이 멈추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들이 기대했던 합리적인 가격의 AI PC를 출시하기가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은 사실"이라며 "PC 기업들은 마진을 낮추기보다는 출시를 연기하거나 제품을 재설계해 대응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완제품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가중되면서 해당 기업에 중앙처리장치(CPU)를 공급하는 인텔, AMD, 퀄컴 등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특히 세 기업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개화한 AI PC용 CPU 공급을 확대할 예정이었지만, PC 업체가 D램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서 전체 생산 규모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