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지난 4년간 최고경영자(CEO)로 회사를 이끌어온 조주완 사장을 대신해 가전 '기술통'으로 꼽히는 류재철 HS사업본부장(사장)을 새로운 사령탑에 앉혔다. 전 세계적으로 TV, 가전 수요 부진과 가격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본원적 기술력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는 해석이 나온다.
LG전자는 27일 이사회 승인을 거쳐 '2026년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확정했다. LG전자는 생활가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류재철 사장을 신임 CEO에 선임하며 "금성사 가전연구소로 입사해 CEO까지 오른 기술 리더"라며 "LG전자 사업의 본원 경쟁력을 강화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조주완 사장의 교체설은 LG 안팎에서 올해 하반기 내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조 사장은 TV, 가전에 치우쳤던 LG전자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차량용 전장사업, 기업용 비즈니스(B2B) 등으로 확장하는 데 초석을 다졌다. 하지만 사업 확장 속도와 수익성 재고 측면에서는 근본적 기술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LG 고위 관계자는 "CEO 교체의 주된 배경은 LG전자 각 사업본부의 근원적 경쟁력 강화를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단단하게 만들 인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류재철 사장의 가장 큰 강점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집요할 정도로 파고 드는 디테일과 풍부한 현장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LG전자는 류 사장의 경영 철학으로 '문제 드러내기'와 '강한 실행력'이라고 강조했다. 류 사장은 사업의 본질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철저한 자기인식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 사장 선임 이후 LG전자는 구매, 제조를 비롯해 모든 사업의 밸류체인에 대한 대대적 점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올해 HS사업본부는 국내외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문제 드러내기 콘테스트'를 실시했다. 톱-다운 형식의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실무자의 시각에서 개선이 필요한 요소를 발굴해 혁신하자는 취지"라며 "이 콘테스트에서 도출한 수천 건의 문제와 이에 대한 해결책은 LG 생활가전의 본원적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 사장은 매년 말 사업본부 소속 리더 수백명을 불러 GIB 행사를 주관, 조직의 강한 실행력을 주문하고 직접 독려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GIB란 'Go Into Battle'의 줄임말로, 마치 전장에 들어서는 장수의 마음가짐으로 사업에 임하자는 의미를 담은 리더십 워크숍이다. 내년도 사업을 시작하기 전 사업본부 소속 리더들이 전부 모여 올해 나온 문제를 드러내 강도 높게 반성하고 내년도 목표 달성 의지를 다지는 행사다.
한편 류 사장은 품질과 원가 경쟁력, 개발 속도를 강화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영자로 알려졌다. 그는 생활가전 여R&D(연구개발) 직군에 오픈AI의 기업용 '챗GPT 엔터프라이즈'를 기반으로 하는 추론형 AI를 사내 최초로 도입했다. 다양한 변수를 입력하면 실제 실험 없이도 결과를 도출해 R&D 기간과 개발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임 조주완 사장이 회사의 큰 비전을 제시하며 중장기적인 토대를 닦아왔다면 류재철 사장은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추진력을 갖춘 경영자"라며 "제조부터 공급망 전반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며 특히 디테일에 매우 강한 형태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