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5일 2026년 임원 인사에서 지난 5년 가까이 이어져온 임원 규모 감축 기조를 깨고 부사장, 임원 승진자를 전년보다 대폭 늘렸다. 재무통인 박학규 사업지원실장(사장)이 새롭게 삼성전자의 2인자로 올라선 가운데 '몸집 줄이기'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인공지능(AI), 로봇,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기술 분야 전문가를 대거 등용했다.
25일 삼성전자는 부사장, 상무, 펠로우, 마스터를 임명하는 2026년 정기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임원 승진자는 모두 161명으로, 지난해 137명보다 큰 폭으로 확대됐다. 삼성전자 측은 "산업 패러다임의 급속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AI, 로봇,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미래 기술을 이끌 리더들을 중용했다"고 설명했다.
◇ 노태문 시대, 완제품 사업에 AI·모바일 DNA 이식
올해 부사장, 임원 승진자의 상당수는 AI, 모바일, 반도체 분야에 포진됐다. 삼성전자의 완제품 사업을 총괄하는 노태문 DX부문장(사장)이 부임한 가운데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경험(MX) 사업부에 파격적인 승진자들이 몰렸다.
DX부문은 그동안 모바일 분야에서 AI 혁신을 담당할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실제 MX사업부에 40대 부사장들이 잇달아 발탁됐다. 올해 갤럭시 스마트폰 시리즈의 성공 가도에 공헌한 대규모언어모델(LLM) 전문가 이성진 MX사업부 랭기지 AI 코어(Language AI Core) 기술개발그룹장(부사장)이 46세의 나이로 부사장을 달았다.
'AI폰'이라는 콘셉트와 초슬림 폼팩터 디자인을 기획한 강민석 MX사업부 스마트폰PP팀장도 49세의 나이에 부사장에 올랐다. 강민석 부사장은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과 스마트폰 기획 경험에 특화한 상품 기획 전문가로, 갤럭시 AI를 적용한 세계 최초 AI폰 기획 공로를 인정 받았다.
삼성전자와 시너지를 모색해온 삼성리서치에도 미래 기술을 이끌 새로운 리더들을 대거 포진시켰다. 이윤수 삼성리서치 데이터 인텔리전스 팀장(부사장)도 삼성 스마트폰 사업의 AI 기능 혁신에 공헌한 인물로 꼽힌다. 로봇 소프트웨어 전문가인 최고은 삼성리서치 상무도 41세의 나이에 자율주행 로봇 개발과 실시간 조작 기술 개발 성과를 인정받아 상무에 올랐다.
이는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과 삼성전자 투톱을 차지하게 된 노태문 사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 사장은 DX부문장 대행을 떼고 부문장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수차례 완제품 사업 전반에 걸친 AI 혁신을 강조해왔고, 대표적 사례로 MX사업부의 AI 경쟁력을 완제품 사업 전반에 이식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 신뢰 회복에 초점 맞춘 반도체, 수율 개선에 총력
지난해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반도체 부문에는 철저한 신상필벌 기조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D램 공정을 비롯해 고대역폭메모리(HBM),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삼성 반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린 인물들이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징적인 점은 오랜 기간 HBM, 파운드리 등 수율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온 삼성 반도체가 이번 인사에서 D램, 파운드리 등 주요 분야의 '불량 분석' 전문가들을 부사장으로 잇달아 승진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부임한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 주도로 진행되어 온 수율 개선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최근 최첨단 공정인 2나노 공정을 비롯해 전반적인 수율 개선에 청신호를 보이고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서는 김영대 제품기술팀장(부사장)이 승진했다. 김 부사장은 반도체 평가분석 전문가로 웨이퍼 특성, 불량 분석 테스트 방법론을 혁신한 '수율 청부사'로 알려졌다. 특히 올해 삼성 파운드리의 2나노, 3나노 공정 수율 개선이 크게 공헌했다는 전언이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추격을 허용한 D램 리더십을 되찾겠다는 의지도 이번 반도체 부문 인사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카이스트 박사 출신의 이병현 메모리사업부 D램 PA2그룹장(부사장)은 48세의 나이로 부사장에 올랐다. 그는 차세대 D램 공장인 D1C D램과 6세대 HBM(HBM4) 개발을 주도하며 고질적인 불량 문제를 제어하고 소자 성능을 개선한 공을 인정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