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도체 기술 자립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향후 몇 년 안에 구조적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가 국회와 산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당장은 호황 국면을 맞고 있지만, 중국의 국산화 전략이 가속화될 경우 이르면 2027년 이후 양국의 격차가 급격히 좁혀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우한에 있는 YMTC 팹./YMTC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한중의원연맹 연구 발표회에서는 중국 반도체 생태계 확장 속도를 "예상보다 훨씬 공격적"이라고 평가하는 보고가 나왔다. 발표를 맡은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미국의 제재가 오히려 중국의 개발 속도를 높였다"며 "중국은 국가적 자본과 정책 역량을 총동원해 반도체를 전략 산업으로 집중 육성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대표 기술기업 화웨이에 대해 "소재·설계·광전자·소프트웨어를 한 축으로 엮어내는 반도체 항공모함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기업들의 투자 및 발전 속도도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 최대 낸드플래시 업체 YMTC는 최근 우한에 세 번째 반도체 공장 건설에 착수하며 생산 능력 확대에 들어갔다. 미국의 장비 제재로 최첨단 노광장비 확보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YMTC는 국산 장비 도입과 정부 보조금 확대를 통해 생산 차질을 줄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CXMT)도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 개발을 마치고 화웨이에 샘플을 제공했으며,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업계는 "중국 정부의 '빅펀드'가 CXMT의 기술 격차 축소를 빠르게 이끌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내 산업계 전망도 비슷한 우려를 드러낸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 1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올해 중국의 산업 경쟁력이 이미 한국을 웃돌고 있다고 답했으며, 5년 뒤에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철강·기계·배터리·디스플레이·자동차 부품 등 일부 업종은 이미 중국이 한국의 경쟁력을 앞선 것으로 평가됐고, 반도체·전기전자 역시 격차가 근소한 수준으로 좁혀진 상태다. 특히 2030년 전망에서는 반도체를 포함한 모든 주력 산업에서 중국이 한국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이 많았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중국 메모리 업체의 HBM 기술은 2~3년 내 한국 수준에 근접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격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구조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의 원자재·소재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미중 갈등이 반복될 경우 특정 품목 공급 차질이나 수출 제한이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내 인력 유출도 구조적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메모리 업체에는 인텔·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 엔지니어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한국이 수십 년간 축적한 노하우가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단순한 기술 경쟁 단계를 넘어 '국가 전략'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국·미국·대만처럼 정부가 직접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고 공급망을 관리하는 구조를 갖추지 않을 경우, 향후 AI 시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HBM을 전략물자 수준으로 관리해 GPU(그래픽처리장치) 배정 협상력으로 활용하는 전략, 원자재 공급망을 중국 의존에서 다변화하는 체제 구축, 핵심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산업·학계 연계 프로그램 등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를 한국 반도체 산업의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본다. AI 확산으로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는 지금은 한국 기업에 유리한 구간이지만, 중국이 기술 자급률을 일정 수준 이상 끌어올리는 순간 한국의 수출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력뿐 아니라 인력·공급망·정부 지원 체계까지 전반적인 재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전병서 소장은 "지금은 단순히 차이나 리스크를 관리할 단계가 아니다"며 "반도체를 국가안보 산업으로 규정해 정부와 기업이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다음 사이클을 주도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