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기술 장벽'을 바탕으로 사업 경쟁력을 확대하자."(이청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우리가 영속하기 위해서는 경쟁 우위를 가지고 모방하기 어려운 '우리만의 해자(垓子)'가 필요하다."(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수장은 최근 임직원 소통 행사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중국 업체의 거센 추격에 대응하기 위해선 기술 격차 유지가 핵심임을 '장벽·해자'에 빗대 강조한 것이다. 양사 모두 중국과 기술 격차를 보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중심으로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중국 업체의 액정표시장치(LCD) 저가 공세에 사업 위기를 겪은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모두 '기술 강화를 통한 성장'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셈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할 연구개발(R&D) 투자 집행 기조에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연구개발비를 꾸준히 늘려 온 반면, LG디스플레이는 최근 그 규모가 줄었기 때문이다.
◇ LGD 연구개발비, 삼성D 대비 1조2500억원 적어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의 올 3분기 누적 연구개발비는 1조6686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에는 이 기간 1조7616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 올해 5.28%(약 931억원) 감액한 셈이다. 이에 따라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도 전년 동기 9.4%에서 0.4%포인트(P) 감소한 9.0%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추세라면 LG디스플레이의 올해 연구개발비가 2조원 안팎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5년간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연구개발비를 증액해 왔다. 2020년 2조4102억원(매출 대비 비율 7.9%)에서 2022년 2조8554억원(8.3%)로 증가하더니, 2023년에는 3조원 넘는 금액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작년에도 전년(3조1366억원) 대비 11.3% 증가한 3조4900억원(12.0%)을 썼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는 비상장 기업으로 분기별 연구개발비용을 공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증권가에선 삼성디스플레이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전년과 비슷한 추이로 매출에 10~13% 정도를 연구개발비로 집행했다는 추정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올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이 기간 20조3484억원의 누적 매출을 기록했다. 전자·디스플레이 분야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약 2조원에서 2조6000억원 수준의 연구개발비를 집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모두 '기술 격차'를 강조하면서도 연구개발 투자 기조가 갈린 건 실적 차이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국의 LCD 저가 공세에도 중소형 OLED 중심으로 수익성을 방어해 왔다. 반면 LG디스플레이는 대형 패널 사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적자 늪에 빠졌고, 연구개발 투자 여력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4월 대형 LCD 패널 사업을 전면 철수하고 OLED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면서 올 3분기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202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발생한 누적 적자는 5조2383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삼성디스플레이의 세계 스마트폰 패널 점유율(금액 기준)이 올 3분기 43.9%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작년 말 41.0%에서 영향력이 더 증가한 셈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를 기반으로 2023년 5조5665억원, 2024년 3조733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 역시 2조1603억원으로 집계됐다. LG디스플레이와 달리 흑자를 이어오고 있다.
◇ 이재용·구광모 '韓 투자 확대' 발표… "OLED 역량 키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 협상 후속 관련 민관 합동회의에 참석해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국내 투자 확대'를 약속했다.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모두 이에 따라 OLED 생산 시설 확대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9월 발표했던 '향후 5년간 6만명 국내 고용' 약속을 지켜나갈 계획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R&D를 포함해 국내 시설 투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민관 합동 회의 직후 별도 자료를 내고 향후 5년간 연구개발을 포함한 국내 투자에 총 45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투자 계획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충남 아산사업장에 구축하고 있는 생산 시설도 포함된다. 앞서 삼성디스플레이는 4조1000억원을 2026년까지 투자해 8.6세대 IT용 OLED 패널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지난 2023년에 발표한 바 있다. 충남 아산사업장에 들어설 생산 라인은 올해 말 시험 가동에 들어가 내년 중순쯤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구 회장도 "향후 5년간 예정된 100조원의 국내 투자 중에서 60%를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기술 개발과 확장에 투입해 협력사들과 함께 경쟁력을 높이며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구 회장이 언급한 계획에는 LG디스플레이가 지난 6월 발표한 1조2600억원 투자가 포함된다. 회사는 특히 7000억원을 현재 대형·중형·소형 OLED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생산 사업장 확대에 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