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범용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면서 글로벌 전자업계의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확대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비중이 늘어나자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이 줄었고, 이 영향이 스마트폰·PC·노트북 등 주요 완제품 제조사들의 비용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7회 반도체 대전(SEDEX 2025)을 찾은 관람객이 삼성전자 부스에서 HBM4를 둘러보고 있다./뉴스1

20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D램 고정거래가격은 전년 대비 171.8% 급등했다. 주요 공급사들이 재고 축소를 이유로 출하를 조절하면서 구형 D램 가격이 신형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낸드플래시 역시 물량 부족이 이어지고 있으며, 512Gb TLC 웨이퍼 현물 가격은 지난주 17% 넘게 상승했다.

국내 소비자 가격도 두 달 새 급등했다. 가격 비교 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삼성전자 DDR5-5600 16GB 제품은 지난 9월 약 6만9000원에서 19일 기준 20만4000원으로 약 3배가 됐다. SK하이닉스 1TB SSD 가격도 같은 기간 24% 상승했다. 업계는 메모리 가격 비중이 노트북 제조원가의 10~18%에서 내년 20%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스마트폰 부품 가격도 같은 흐름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모바일 D램(LPDDR5) 가격은 전년 대비 약 15% 상승했고,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카메라모듈 가격도 각각 9.0%, 11.3% 올랐다. PC·노트북과 스마트폰 모두에서 메모리와 핵심 부품 가격이 동반 상승하며 제조사의 비용 구조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스마트폰 시장 비중이 큰 인도·중국에서는 소비자 가격 조정이 이미 시작됐다. 인도에서는 삼성전자·오포·비보가 갤럭시 A17·F31·T4x 등 보급형 모델의 출고가를 최근 최대 2000루피(약 3만3000원) 인상했다. 부품 부족이 지속될 경우 차세대 모델에서는 최대 6000루피(약 10만원) 인상 가능성도 언급된다.

중국에서도 샤오미가 전작보다 300위안(약 6만원) 높은 가격으로 '레드미 K90 프로 맥스'를 출시했다. 레이쥔 샤오미 최고경영자(CEO)는 "부품 단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애플도 내년 플래그십 제품 출고가의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23 시리즈 이후 3년간 출고가를 동결해 왔으나 부품 비용과 환율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애플도 아이폰용 칩을 공급하는 TSMC로부터 최근 공급가 인상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렌드포스는 "메모리 가격이 강력한 인상 주기에 진입했으며, 이로 인해 최종 제품 소매가격을 끌어올려 소비자와 시장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원가 부담 확대는 미국 증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메모리 가격 상승 수혜가 예상되는 마이크론·샌디스크는 최근 강세를 보였지만, 델·HP 등 완제품 업체 주가는 17일(현지시각) 각각 8%, 6%대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메모리 비용 증가가 수익성 둔화 우려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원가 상승이 전자기기 소비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론도 커지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내년 스마트폰과 노트북 가격이 10% 안팎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하며, 가격 민감도가 큰 보급형 시장에서 수요가 강하게 둔화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트렌드포스는 또 "올해 4분기 D램 계약 가격은 75%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며,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은 계속될 것"이라며 "2026년에는 스마트폰 제조 원가가 올해 대비 5~7%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노트북 역시 메모리 가격 급등으로 내년 원가가 10~12% 오를 것으로 예상돼, 완제품 가격 압박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